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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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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申采浩)가 우리나라의 상고시대의 역사를 서술한 책이다. 단군시대로부터 백제의 멸망과 그 부흥운동까지가 담기어 있다. 1931년에 《조선일보》 학예란에 6월 10일 부터 103회에 걸쳐 연재하였고, 1948년에 종로서원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된 책이다. 본디 이 책은 신채호의 《조선사》 서술의 한 부분이었는데, 연재가 상고사 부분에서 끝났기 때문에 《조선상고사》라고 불리고 있다.

신채호의 한국고대사 연구는 하야시[林泰輔]의 《조선사》(1892)와 그 영향을 받은 한말 국사교과서들을 비판할 목적으로 1908년 대한매일신보사에 재직중 연재한 〈독사신론 讀史新論〉이 시초였다. 특히 여기서 한국고대사를 부여족의 역사로 보고 단군·부여·고구려의 정통 계승론을 제시했다. 이어 191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고구려·발해의 여러 사적들을 답사하는 한편, 대종교의 윤세복(尹世復) 등을 만나 〈조선사〉를 집필하면서 한국고대사 인식을 심화시켰다. 그리하여 1910년대 후반에 저술한 〈조선상고문화사〉에서는 만주·한반도와 부여족의 식민지로서 중국의 일부까지 한국고대사 영역에 포함시켰다. 그후 1922년경까지 전체 한국사를 구상하면서 〈조선사통론〉·〈문화편〉·〈사상변천편〉·〈강역고〉·〈인물고〉 등을 집성했고, 이때 〈조선상고사〉의 본문이 완성되었다. 1924년에는 량치차오[梁啓超]의 〈중국역사연구법〉 등을 읽으면서 근대적 역사연구방법론을 심화시켰고, 〈전후삼한고 前後三韓考〉 등 〈조선사연구초〉의 수록 논문, 〈조선상고사〉의 〈총론〉 부분 등은 이때 완성되었다.

전12편으로서 편명은 1편 총론, 2편 수두시대, 3편 3조선분립시대, 4편 열국쟁웅(列國爭雄)시대 대(對)한족격전시대, 5편(1)고구려전성시대,(2)고구려의 중쇠(中衰)와 북부여의 멸망 6편 고구려·백제 양국의 충돌, 7편 남방제국 대(對) 고구려 공수동맹, 8편 3국혈전의 시(始), 9편 고구려 대수전역(對隋戰役), 10편 고구려 대당전역(對唐戰役), 11편 백제의 강성과 신라의 음모 등이다.

제 1편 총론에서 신채호는 그의 역사이론을 전개한다. 그는'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서의 역사’를 파악하고 있다. 즉, 그는 역사발전의 원동력을 사물의 모순·상극(相克) 관계에서 파악하고 있는데, 이는 헤겔류의 소박한 변증법적 논리가 도입된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그는 이런한 모순·투쟁 관계가 역사로서 채택되기 위해서는 시간적인 상속성과 공간적인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총론에서 저자는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기 위하여서는 사료의 선택·수집·비판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역사학연구의 방법론으로서의 실증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이념과 방법을 제시하면서 신채호는 과거의 사대주의적 이념에 입각하여 한국사를 서술한 유학자들과 당시 근대적인 역사학을 한다던 식민주의 사가들을 비판하고, 그 비판 위에서 이 저술의 목적과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제2~4편에서는 한국상고사를 신수두시대·3조선분립시대·열국쟁웅시대로 구분하고, 이를 부여와 삼한으로 이어지는 정통으로 보았다. 특히 단군신화의 비과학성을 지적하면서 조선족이'아리라'를 중심으로'불'을 개척하면서 형성된 공동체 신앙에서 제주로 종사하는 자를 단군으로 파악했다. 또 삼한도 전·후 삼한으로 나누고 한사군(漢四郡)은 실재하지 않았거나 랴오허[遼河] 지역에 존재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는 우리 역사영역이 한반도가 아닌 만주와 북중국 일대에 걸쳐 있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한편 부루(夫婁)를 단군의 손(孫)이자 부여왕으로 보아 정통성을 인정하고'고구려­한 무제(漢武帝)의 9년전쟁설'을 펴면서 고구려의 건국을 200년 이상 올려잡고 있다. 이어 제5~10편에서는 삼국의 성립과 대외항쟁기를 다루었는데, 고구려야말로 한민족을 외세로부터 보호하고 대외항쟁에서 승리를 거둔 이상국가이자 삼국 중의 정통으로 파악했다. 백제에 대해서도 근구수왕·동성왕 때 랴오시[遼西] 지역과 산둥[山東]의 전진(前秦)지역까지 공격·소유했다는 요서경략설(遼西經略說)을 주장하는 한편, 일본 역시 식민지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신라의 비중은 크게 두지 않고 단지 진흥왕대의 강성 원인을 화랑(花郞)의 존재에서 찾고 있다. 제 11편에서는 신라가 당(唐)과 연합하여 백제·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은'김유신(金庾信)의 음모'이며 고구려의 고토를 상실했다고 보아 신라정통론을 부정하고 삼국통일에 대해 극단적인 부정적 평가를 내리는 한편, 백제부흥운동의 경과를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이어 〈해동역사〉의 긍정적 평가를 통해 발해사를 한국사에 편입할 것을 강조하고

그는 이 책에서 종래의 한국사의 인식체계를 거부하고 새로운 인식체계를 수립하였다. 종래의 단군·기자·위만·삼국으로 계승되는 인식체계와 단군·기자·삼한·삼국의 인식체계를 거부하고 신채호는 실학시대의 이종휘(李種徽)의 《동사(東史)》에서 영향을 받은 듯, 대단군조선·고조선·부여·고구려 중심의 역사인식체계를 수립하였다. 그리고 종래 사학사의 평가에서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를'춘추필법의 노예성에 근거한 사대주의'로 비판하고, 〈천부경〉·〈서곽잡록〉 등 상대적으로 비유교적인 사서를 민족주체적 사료로 중시했다.

이 책은 종래의 우리나라의 고대사 인식과는 다른 특이한 면을 제시하면서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다. 교설적(敎說的)인 성격이 다분히 나타나면서 민족주의 의식이 지나치게 짙게 역사학에 투영되어 역사서술과 그 가치평가의 공정성(公正性)을 감소시킨 면도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그가 애써 강조한 실증성이 결여된 부분도 있다. 그 때문에 이 책의 내용과 서술은 비판적으로, 신중한 이해 밑에 수용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