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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웨이, 대한민국을 구한 지휘관

리지웨이, 대한민국을 구한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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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에서 아군의 주역은 맥아서(Douglas MacArthur) 원수와 리지웨이(Matthew Bunker Ridgway) 장군이었다. 이 두 영웅 덕분에 대한민국은 확실한 멸망 바로 앞에서 살아났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들에게 고마워하지 않는다. 맥아서는 칭찬과 비난을 여전히 동시에 받으니 잊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리지웨이는 완전히 잊혔다. 그는 ‘잊힌 전쟁’의 ‘잊힌 영웅’이다. 그래서 리지웨이의 전기를 쓰는 것은 비록 그것이 작은 책자에 지나지 않더라도 보람이 큰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 전기를 리지웨이의 모습과 행적을 그리는 데 전적으로 바치지 않았다. 그를 통해서 6.25전쟁을 살피는 데 오히려 마음을 썼다. 그의 눈길과 걸음을 따라가는 것은 6.25전쟁을 조망하는 데 무척 좋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6.25전쟁이 워낙 큰 사건이었으므로 그것을 제대로 살피기는 쉽지 않다. 비록 북한의 한국 침공으로 시작되었고 한반도에 국한되었지만, 그것은 스물이 넘는 나라들이 가담한 국제전이었고 3년 넘게 이어졌다. 그 전쟁에서 국제연합군은 40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고 공산군 사상자는 200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 전쟁의 영향으로 300만 명의 북한 주민들과 50만 명의 한국 시민들이 죽었다. 실제로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전쟁이었다.

1950년 6월 25일 전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북한군의 기습을 받아 한국군은 3일 만에 완전히 무너졌다. 빠르게 한국을 구원한 미군의 반격에 북한군은 3개월 만에 무너졌다. 그 뒤로 공식적으로 ‘한국 전쟁(Korean War)’이라 불린 6.25전쟁은 미군과 중공군 사이의 싸움이 되었다. 한국군과 북한군은 각기 미군과 중공군을 돕는 처지가 되었다.

자연히 6.25전쟁을 제대로 살피고 전반적 상황을 조망하려면 미군이나 중공군 지휘관의 입장에 서서 살피는 것이 긴요하다. 그러나 중공군은 북한군이 패퇴한 뒤에 참전해서 전쟁의 초기 상황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었다. 미군 지휘관으로는 맥아서와 리지웨이가 좋은 조망을 제공하는데 맥아서는 중공군의 개입 이후엔 실질적으로 국제연합군을 지휘하지 않았다. 반면에 리지웨이는 중공군의 기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패주하던 아군을 추슬러서 중공군의 남진을 막아냈고 휴전 협상을 주도했다. 그래서 그는 전쟁에 대해 좋은 조망을 제공한다.

우리 사회엔 6.25전쟁을 다룬 저서들이 그것의 중요성에 비해 너무 적고 일반인들을 위한 저서들은 더욱 드물다. 게다가 그 동안 북한으로 기우는 지식인들은 북한의 침입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감추거나 왜곡하려고 시도해서 우리 사회에선 그 전쟁의 과정보다 오히려 기원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우리가 잊은 은인에 관한 이 작은 전기가 시간에 쫓기는 일반인들에게 6.25전쟁을 이해하는 단서 하나가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