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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반란, 1948년 4월 3일

섬의 반란, 1948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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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는 남로당이 자유민주주의 정부 수립을 방해하기 위해 일으킨 ‘반란의 날’을 ‘4.3 희생자 추념일’로 정했다. 이러한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면서 『섬의 반란, 1948년 4월 3일』을 독자 앞에 내놓게 되었다.

제주 4.3은 내 소설의 토양이었다. 그것은 내 아름다운 소년기를 휩쓸었던 폭우였다. 아마 소설을 쓰게 된 것도 이 비극적인 사건의 근원에 대한 물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침에 만났던 사람을 저녁에 다시 만나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고 어른들은 그 악몽의 세월이 지나 집안의 대소사에 모이면, 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모진 운명처럼 살아왔던 그 시간에서 살아남은 자로서 먼저 죽은 자의 아픔과 원한을 증언하였다. 분노도 증오도 원망의 기색도 없이 너무 담담하게 말하던 그 표정과 어투에서 나는 문학의 생리를 생각하면서 배웠다. 9살이었던 그때 일이, 어제 일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남은 것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야기 근원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내 인생살이에서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을 모질게 경험했다. 참여정부 시절에 만든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 대한 내 생각을 「본질과 현상」에 게재했는데, 제주 4.3 관련 단체와 일부 지방 언론이 입에 담을 수 없는 모욕적인 언어로 나를 매도했다. 처음에는 약간 충격을 받았는데, 그런 분위기가 일부에 그친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내 글을 비난했던 그들조차 4.3에 대한 지식이 피상적이고 이념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사건의 진상을 나름대로 팩트 (fact)를 중심으로 써야 하겠다는 어떤 의무감을 갖게 되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식은 역사의식에 따라 달라질 수가 있으나, 그것은 팩트(fact)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그 보고서는 ‘과거사 청산’이라는 정치이념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정치문서’이지 역사적 사건을 복원하려는 진정성이 없었다. 그래서 4.3사건을 객관적 자료에 의해 역사적으로 복원하는 글과, 내가 직접 겪은 체험기를 한데 묶어 독자 앞에 내놓게 되었다.

이 글들이 그 사태의 진상을 완벽하게 드러내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나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이 4.3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부류의 사람도 아니기에 주변부 지역의 역사적 상황을 탐색하려는 작가적 양식으로 이 글을 썼다. 그런데 이 책의 마지막 교정지를 읽으면서 문득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의 아이러니(4.3 추념일 제정)에 대한 답을 얻게 되었다.

제주 4.3사건이 일어났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11연대를 파견하는 과정에서 반란(소위 여순사건)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심각하게 생각한 정부에서 본격적인 숙군(肅軍) 작업을 실시함으로 (그 과정에서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한국군 내부에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세력과 공산 프락치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었다. 만약 이때 숙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6.25전쟁의 양상도 달라졌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아아, 그러기에 정부가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거부하여 일으킨 ‘반란의 날’을 사건 희생자 추념일로 정하게 되었구나. 역사의 아이러니에 대한 해답을 이렇게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