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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고 간결한 신채호선생님의 글을 즐겨 보시기 바랍니다.



항일독립운동가, 사학자, 언론인으로서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필명은 금협산인(錦頰山人) ·무애생(無涯生)·열혈생(熱血生)·한놈·검심(劍心)·적심(赤心)·연시몽인(燕市夢人)이며 가명은 유맹원(劉孟源)·박철(朴鐵)·옥조숭(玉兆崇)·윤인원(尹仁元)이다. 그리고 호는 단재(丹齋) ·일편단생(一片丹生) ·단생(丹生)이며 대전 출생이다.

아버지는 광식(光植)이다. 사간원 정언(정6품)을 지낸 할아버지 성우(星雨)에게서 한학교육을 받았고, 10여 세에 사서삼경과 〈통감〉을 읽어 신동이라 불렸다. 1897년(광무 1) 할아버지의 소개로 전 학부대신 신기선(申箕善)의 집에 드나들면서 신구서적을 섭렵했으며 1897년 신기선(申箕善)의 추천으로 성균관(成均館)에 들어가 이남규(李南珪)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김연성(金演性)·변영만(卞榮晩)·이장식(李章植)·유인식(柳寅植) 등과 사귀었다.

그해 10월 독립협회에 참여하여 활동했으며, 1901년 신규식이 설립한 문동학원(文東學院)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1904년 6월 성균관에서 조소앙 등과 함께 항일성토문을 작성하여 이하영(李夏榮) 등의 매국행위를 규탄하는 한편, 신규식·신백우 등과 산동학원(山東學院)을 설립하여 계몽운동을 폈다. 1905년 2월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그해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장지연(張志淵)의 초청으로 《황성신문(皇城新聞)》에 논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듬해 1906년 양기탁의 천거로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주필로 활약하였으며, 내외의 민족 영웅전과 역사 논문을 발표하여 민족의식 앙양에 힘썼다. 즉, 1910년 망명할 때까지 〈일본의 삼대충노(三大忠奴)〉·〈한일합병론자에게 고함〉 등의 논설과 〈독사신론 讀史新論〉 등 역사관계 논문, 시론인 〈천희당시화 天喜堂詩話〉 등을 연재하고, 〈대한협회월보〉·〈대한협회회보〉 등에 〈대한의 희망〉·〈역사와 애국심과의 관계〉 등을 발표했다. 번역서로 〈이태리건국삼걸전〉·〈을지문덕〉을 국한문판으로 발행하기도 했다.

또한 여성교육용 한글잡지인 〈가정잡지〉에도 관여했다. 이러한 언론활동과 더불어 1906년 3월 국권회복을 위해 교육과 산업을 진흥시켜야 한다는 목표 아래 결성된 대한자강회와 그 후신인 대한협회에 참가했다. 1907년 양기탁·이동녕·이회영·이동휘·안창호·전덕기·이갑·이승훈 등과 더불어 비밀결사인 신민회(新民會)를 결성하고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 등에 가입 ·참가하고, 이듬해 순 한글 《가정잡지》를 편집 ·발행하였다.

 

저서에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조선상고문화사(朝鮮上古文化史)》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艸)》 《조선사론(朝鮮史論)》 《이탈리아 건국삼걸전(建國三傑傳)》 《을지문덕전(乙支文德傳)》 《이순신전(李舜臣傳)》 《동국거걸(東國巨傑)》 《최도통전(崔都統傳)》 등이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