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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News on 22/02 Afternoon

[책꽂이 - 영어의 힘]무식하고 혈기만 왕성했던 영어는 어떻게 세계어가 됐나
【기사펼쳐보기】 [서울경제] 전 세계 영어 사용자는 15억 명 이상이고, 영어의 경제적 가치는 무려 6,171조 원에 달한다. 모국어로 화...
| 2019.02.22 08:40 |

[서울경제] 전 세계 영어 사용자는 15억 명 이상이고, 영어의 경제적 가치는 무려 6,171조 원에 달한다.

모국어로 화자의 수로 치면 중국어(베이징어)가 10억 명 이상으로 가장 많겠지만, 영어가 세계 각지에서 널리 사용된다는 점에서 영어는 세계 공용어나 마찬가지다.

‘영어의 힘’은 겨우 15만 명이 쓰던 게르만어의 방언에 불과했던 영어가 어떻게 세계를 정복하게 됐는지 5세기부터 현재까지 영어의 성장스토리를 담았다.

책에 따르면 게르만 전사들과 함께 온 영어는 499년 영국에 와서 9세기에는 바이킹의 공격을 받았고, 11세기는 노르만족에게 정복당하면서 영어의 일생일대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또한 라틴어와 프랑스 등에 밀려 자신의 고향에서조차 3등 언어로 전락해 상류층이 되려면 쓰지 말아야 할 언어로 취급되는 수모까지 당한다.

지금 영어의 위상을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한때 천덕꾸러기였던 영어는 미국이라는 ‘가장 중요한 상속자’를 만나면서 팔자기 피기 시작했다고 책은 밝힌다.

무엇보다 영어가 세계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언어적인 요인 즉 다른 언어들을 흡수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점이 흥미롭게 설명된다.

또한 단어에 성을 없애는 등 과감한 단순화 등 영어가 힘을 가질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1만9,500원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할머니 우주인, 할매 시인
【기사펼쳐보기】 팔이 아파 한의원에 다니고 있다. 기대한 만큼 효험이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침을 맞으며 건강상담 하는 재...
| 2019.02.22 06:11 |

팔이 아파 한의원에 다니고 있다.

기대한 만큼 효험이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침을 맞으며 건강상담 하는 재미에 꾸준히 가고 있다.

지난주에는 갱년기를 잘 지나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갱년기를 잘 지나면 동물로서의 삶이 끝나고 인간으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거죠.

인류문명은 할머니들에 의해 발전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좀 과로했을 뿐 저는 갱년기는 아닙니다만, 하는 마음이었지만.

그럴 법하다고 고개를 끄덕인 것은 얼마 전 읽은 소설 때문이었다.

‘나를 키우는 주인들은 너무 빨리 죽어 버린다’의 희진은 서른다섯 살에 우주로 가서 40년이 지나 극적으로 구조되어 귀환했다.

지구로 돌아온 그는 우주의 어느 행성에 인간과 같은 지적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자신은 최초의 조우자였다고 주장했으나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행성의 위치도 지정하지 못하고 생명체에 대한 어떤 기록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난당해 도착한 행성에서 그들의 보호를 받으며 살았던 시간과 기억을 지키고 싶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할머니는 아무도 믿지 않는 말을 손녀에게 전하며 남은 인생을 살았고, 그 전언의 기록이 바로 소설이다.

한의사의 말대로라면 할머니는 우주에서 갱년기를 지나고, 진짜 인간으로의 전환기를 맞았으며, 생존의 공포를 넘어 외계의 말을 들었으니, 인류의 문명은 아무도 믿지 않는 할머니의 경험으로 발전하고 있는 셈이다.

에스에프(SF) 형식의 소설은 인간의 삶과 문명의 미래에 대한 온갖 비유로 가득 차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외계 생명체들의 언어다.

문자 대신 색채로, 문서나 책 대신 그림으로 기록을 남기는 그들의 언어.

그러니 풍경이 말이 되고 빛과 어둠이 말의 의미를 결정할 터였다.

인간의 가청범위가 넘는 음성으로 대화를 나누고, 인간의 시각범위로 구분할 수 없는 수만 가지의 색깔로 역사를 기록하고 삶을 전달하는 그들은 “인간의 감각으로는 온전히 느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완전한 타자”였다.

그런 말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면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 전체를 온 힘을 다해 쓰지 않으면 안 될 테고, 그러니 외계의 낯선 타자를 탐구하고 이해하는 직업에는 할머니가 적임자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할머니 우주인을 미처 상상하지 못했을까.

시를 쓰는 칠곡 할매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여든이 넘어 배운 문자가 할머니들에게 어떤 세계를 열어 주었을까.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 문자를 통해 새로 보이는 ‘경이’야말로 삶과 문자가 합해지면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경지일 텐데, 그건 대여섯살에 문자를 배운 우리가 알 수 없는 우주다.

“여 함 보이소/ 내 이름 쓴 거 비지예/ 내 이름은 강금연/ 칼라카이 영감이 없네”.

할머니는 영감을 그리워하는 걸까 아닐까.

영감은 할머니의 이름을 지운 사람일까, 기억하는 사람일까.

‘내 이름은 강금연’이라는 문장으로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 사람.

그러고 보면 시인도 할머니들에게 적합한 직업이다.

문학평론가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에크리’라는 에베레스트를 오른다
【기사펼쳐보기】 “가 어려운 것을 우연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선집의 겉표지에 ‘에크리’라고 적으면서 스스로 다짐한 바는 나에게 ...
| 2019.02.22 06:06 |

“가 어려운 것을 우연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선집의 겉표지에 ‘에크리’라고 적으면서 스스로 다짐한 바는 나에게 쓰인 것이란 읽히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 자크 라캉이 후기에서 자신의 를 두고 한 말은 그의 책만큼이나 유명하다.

에크리는 라캉이 쓴 유일한 책이다.

‘에크리’는 프랑스어로 ‘쓴 것’, ‘글’이라는 의미다.

1936년부터 1966년까지 다양한 곳에서 발표한 서른 편의 논문들을 라캉이 나름의 순서로 재배치했다.

현재도 간행이 되고 있는 는 강연을 녹음해서 다른 사람이 펴내는 저작이지만, 는 라캉이 직접 쓰고 여러 번 수정해서 냈다는 점에서 한층 더 중요성이 강조되는 저작이다.

“읽히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쉽사리 번역을 허락하지 않았던 가 저작권 계약 25년 만에 우리 손에 쥐어졌다.

“20세기 인문학의 에베레스트”란 출판사의 설명처럼 좀처럼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이 대작의 등반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오랜 기간 라캉을 연구해온 강응섭 예명대학원대학교 교수, 김서영 광운대 인제니움학부대학 교수, 김석 건국대 융합인재학부 교수, 백상현 한국라캉칼리지 상임교수에게 물어봤다.

-는 어떤 내용인가? 김석 라캉이 낸 수수께끼다.

가장 먼저 나오는 논문이 ‘에 관한 세미나’다.

편지는 즉, 글자(Letter)를 뜻하기도 한다.

모든 것의 시작이 언어라는 의도에서 이 논문을 처음에 배치한 것이다.

마지막에 배치한 논문은 다.

책의 순서 자체가 언어에서 시작해 욕망을 거쳐 진리로 가는 구상을 보여준다.

김서영 에서 라캉은 새로운 프로이트를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프로이트의 남근선망 같은 성적인 개념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라캉은 가장 프로이트적인 것은 언어라고 말한다.

우리는 언어 속으로 태어난다.

그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우리는 언어를 가지고 말하지만 우리가 욕망하는 것을 절대로 완전히 전하지 못한다.

내가 말하는 것은 뭔가 어긋나 있다.

비어 있는 틈, 구조가 완전히 닫히지 않게 하는 결여가 있는 것이다.

언어와 언어의 구조를 넘어선 것, 이 둘의 관계를 풀어낸 것이 바로 라캉의 다.

-매우 난해한 저작인데, 어떻게 읽어야 하나? 김서영 가 악명 높지만, 굉장히 재미있는 저작이기도 하다.

첫 번째 논문인 ‘에 관한 세미나’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을 분석하는 문학 비평으로 굉장히 재미있다.

‘프로이트로 돌아가는 것은 곧 무의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란 명확한 주장이 있기 때문에 의외로 잘 이해가 되는 부분도 꽤 있다.

라캉을 프로이트를 가리키는 손가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라캉을 읽으면서 프로이트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으면 좋다.

김석 책을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

‘나 기능의 형성자로서 거울 단계’, ‘정신분석에서의 말과 언어의 기능과 장’, ‘프로이트적 무의식에서의 주체의 전복과 욕망의 변증법’ 같이 많이 인용되는 논문부터 반복적으로 읽어보는 것이 낫다.

또한 해설서를 통해 기본개념을 알면 다가가기 쉽다.

한국어판만 읽으면 잘못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모르면 영역본이라도 구해서 같이 읽어나가는 것을 추천한다.

백상현 만 읽으면 라캉에 대해서 오해할 수 있다.

는 1960년대 중반까지의 논문을 모은 것이라, 그 이후에 정신분석을 언어적 실천이자 창조적 행위로 보는 급진적인 라캉이 잘 표현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와 그 강해서를 같이 읽어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

-라캉은 한국 지식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강응섭 한국의 지식담론을 이끌었던 과 이 1980~88년 군사독재에 의해 폐간된다.

이 시기에 라캉에 관한 첫 번역서와 첫 논문이 나왔다.

이 두 지면에서 다뤄온 민족, 분단, 리얼리즘과는 결이 다른 욕망의 목소리가 라캉의 정신분석을 통해 튀어나왔고 이후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줬다.

김석 1980년대 후반부터 포스트모던 사상가의 하나로 이름이 많이 등장했지만 독자적으로 연구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특히 정신분석을 대중화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라캉이 정신분석을 말하면서 프로이트의 중요성도 다시 부각됐다.

욕망, 성, 환상을 이야기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영화와 미술, 문학 비평에도 영향을 많이 줬다.

김서영 라캉이 처음엔 자아심리학에 대한 비판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자아를 강화하는 방식의 접근에 반대했다.

모든 치유는 기존의 구조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저항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어, 인문학에 미친 영향도 컸다.

유럽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오히려 임상보다 인문학과 예술 쪽에서 수용이 빨랐다.

백상현 현존 철학자 중에선 알랭 바디우가 가장 영향력 있게 활동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는 라캉이 멈춘 곳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라캉이 주체와 진리의 개념을 정립한 사상가이기 때문에 그를 넘어서지 않고서는 철학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비판이든 추종이든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라캉을 지금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서영 우리는 아직도 실천적으로 라캉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린 자신이 아는 지식과 확신 안에서 결판을 보려고 하는 태도를 쉽게 버리지 못한다.

쉽고, 빠르게, 변하지 않는 것을 찾는 건 모두 라캉에 반하는 것이다.

자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사람은 낫지 않는다.

자아의 확신을 무너뜨리고 무의식으로 복귀하라는 라캉의 구호는 21세기에도 유용한 조언이다.

김석 라캉의 저서는 아직 국내에 세 권밖에 번역되지 않았다.

아직 라캉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선 라캉이 슬라보이 지제크를 통해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지제크를 거친 라캉이 아니라 라캉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저작들이 번역되어 나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어판 출간의 의의를 두고 싶다.

백상현 20세기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것을 구성하기 위해, 라캉이란 20세기의 정점에 선 텍스트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

책을 읽는 이유는 책을 먹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그것을 라캉은 ‘책 먹기’라고 말했다.

이제 우린 라캉을 재발명해야 한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단순 가해자만은 아닌 미군, 그러나…
【기사펼쳐보기】 메도루마 과 함께 오키나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마따요시 에이끼(72)의 소설집 이 창비세계문학 67번으로 번역돼...
| 2019.02.22 06:06 |

메도루마 과 함께 오키나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마따요시 에이끼(72)의 소설집 이 창비세계문학 67번으로 번역돼 나왔다.

마따요시의 작품으로는 일찍이 (2014, 글누림)이 번역 소개된 바 있는데, 그 책의 작가 이름은 ‘마타요시 에이키’로 되어 있어서 독자 쪽에서는 혼란을 느낄 수도 있겠다.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과 다른 창비만의 표기 방침 때문인데, 작가 이름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이름과 지명 등 고유명사 표기에도 같은 방침이 적용된다.

마따요시는 (2010)와 (2018) 등이 국내에 소개된 메도루마 과 같은 오키나와 작가이긴 하지만, 메도루마가 오키나와 변방인 북부 출신인 데 비해 마따요시는 과거 류큐 왕국의 중심이었으며 지금은 미군 기지가 밀집된 남부 출신이다.

의 번역자로 이번 책 역시 번역한 곽형덕 교수(명지대 일문과)는 에 실린 ‘조지가 사살한 멧돼지’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 관한 흥미로운 비교를 해 보인다.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 제이가 1970년대 도쿄 술집의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반면, 같은 1970년대에 역시 주크박스가 나오지만 오키나와를 무대로 한 소설 ‘조지가 사살한 멧돼지’의 주인공인 미군 병사 조지는 베트남전쟁에 끌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떤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평온한 도쿄의 일상이 오키나와의 희생에 의해 담보된 것이라고 한다면 두 소설은 완전히 다른 현실을 그린 것이 아니라 미·일 안보체제가 도쿄와 오키나와에서 얼마나 다르게 기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에는 표제작과 ‘등에 그려진 협죽도’ 두 중편이 실렸다.

1996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표제작은 오키나와 섬의 고유한 풍속인 ‘우간’을 소재로 삼는다.

우간이란 ‘우타키’라는 영적인 장소를 참배함으로써 죄를 씻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풍습을 가리킨다.

스낵바로 불리는 술집에서 일하던 열아홉살 남자 대학생 쇼오끼찌는 술집 마담 미요와 여종업원들인 요오꼬와 와까꼬를 데리고 자신의 고향 섬으로 향한다.

웬 돼지 한 마리가 술집에 난입하는 바람에 와까꼬가 “넋을 떨어뜨렸”기 때문.

여자들은 돼지의 침입이 상징하는 액운을 떨치고 각자의 죄를 참회하고자 우간에 나서기로 하는데, 쇼오끼찌는 이 기회에 풍장한 지 13년 된 아버지의 유골을 수습해 문중묘에 납골할 생각이다.

섬에 들어간 일행은 민박집 여주인이 2층 창 너머로 떨어져 다치고, 상한 돼지고기를 먹은 여자들이 설사에 시달리는 등 곡절을 거친 끝에 가까스로 우간에 나선다.

그들이 우간을 위해 찾는 장소는 쇼오끼찌가 아비의 유골을 문중묘에 납골하지 않고 풍장 상태 그대로 보존하면서 새로운 우타키로 삼은 곳.

우간에 나서는 과정에서 여자들은 자신들 삶의 아픔과 설움을 토로하며 죄를 참회하는데, “시련이 없으면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어”라는 와까꼬의 말은 돼지의 ‘보복’이 ‘보답’으로 몸을 바꾸는 전화위복의 이치를 일러준다.

마따요시는 일본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미군기지 관련 소설을 가장 많이 쓴 작가에 속한다.

그러나 가령 미군기지 반대 투쟁에 매진하면서 남는 시간에 글을 쓴다는 메도루마 과 달리 마따요시 소설에서 미군과 오키나와인의 관계는 단순한 가해-피해 관계로 요약되지 않는다.

‘등에 그려진 협죽도’는 미군 아버지와 오키나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젊은 여성 미찌꼬와 미군 병사 재키를 주인공 삼는데, 여기서도 재키는 베트남전쟁에 불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는 인물로 나온다.

미찌꼬의 미군 아버지가 6·25전쟁에서 숨졌다는 배경은 미국과 일본, 한반도가 착종된 동북아 지정학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따요시 소설의 이런 특징은 가령 메도루마의 선명한 노선에 비해 한층 복합적이며 세련된 태도라 할 수도 있겠지만, 옮긴이 곽형덕 교수의 말마따나 “내면의 고통을 만들어낸 현실에 대한 분노 또한 정화할 위험”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폐에 새겨진 역사·문화사
【기사펼쳐보기】 지폐는 고유하다. 나라마다 시기별로 단 하나의 만듦새로 태어났다가 사라진다. 유로화 탄생을 이끈 빔 도이센베르흐 ...
| 2019.02.22 06:06 |

지폐는 고유하다.

나라마다 시기별로 단 하나의 만듦새로 태어났다가 사라진다.

유로화 탄생을 이끈 빔 도이센베르흐 유럽중앙은행(ECB) 초대 총재는 “지폐는 단순한 지불수단이 아니라, 발행국들의 영혼을 반영한 수공예품”이라고 말했다.

대만의 인문학자, 여행작가인 셰저칭이 쓴 도 이 같은 전제 속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모든 지폐는 자신만의 언어로 비전과 이상을 이야기한다.

” 지은이에게 지폐는 낭만이며 미학적 대상이다.

“지폐를 감상하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예술적 탐색”이고, “그 찬란하고 순수한 디자인의 배후에는 다양한 감정과 이야기”가 숨어있다고 본다.

네덜란드는 1950년대까지 지폐에 역사적 인물의 초상을 담았다.

1960년대부터 지폐의 미학적 관점이 바뀐다.

스피노자 등 역사적 인물을 쓰더라도 원화의 원근법을 배제했다.

1970년대 들어서는 역사, 종교, 정치적 의미가 있는 도안을 과감하게 버리고 해바라기, 새, 등대, 토끼 등을 소재로 내세워 “지폐 디자인의 명작”을 만들었다.

지은이는 네덜란드의 예술 운동 ‘데 스틸’의 디자인 철학이 꾸준히 지폐 미학에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풀이한다.

반면 1920년대 독일에서 발행된 ‘긴급 통화’(Notgeld)는 “저속한 색채와 난잡한 스타일에 인쇄 상태마저 불량”하다.

지은이는 이런 통화의 모습에서 당시 독일 국민들이 입은 타격과 고통을 읽는다.

악성 통화 팽창으로 물가가 치솟아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긴급 통화는 국민들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믿을 수밖에 없던 대안이었다.

“긴급 통화 중에는 지역의 해학적인 문구나 우스갯소리를 담은 것도 있었는데, 이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국민들의 고충을 잠시나마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 지은이는 지난 25년간 97개국을 돌아다니며 각 지역의 지폐를 수집했다.

지폐에 등장하는 장소를 직접 찾아가고 현지인, 지폐 디자이너 등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책은 그 가운데 42개국을 추려, 각 지폐에 담긴 역사적 사연을 여행기 형식과 접목해 전달한다.

고고학과 예술사학을 공부하고, 대만의 유명 티브이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약하는 등 대중적 소통에 능한 지은이의 강점이 골고루 발휘된다.

각종 카드와 ‘OO 페이’ 등 디지털 화폐에 익숙해져 종이돈을 볼 일이 드문 독자라도, ‘지폐 미학 취향이 맞는 나라’로의 여행 욕구를 자극받을 수 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촛불 정부’의 공론장에 젠더정치 자리는 없다
【기사펼쳐보기】 지금은 수인번호 ‘503’으로 회자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인기를 누리던 시절 보수 언론은 그를 애니메이션 의...
| 2019.02.22 06:06 |

지금은 수인번호 ‘503’으로 회자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인기를 누리던 시절 보수 언론은 그를 애니메이션 의 주인공 엘사에 비유하며 찬사를 보냈다.

누리꾼들은 이를 비꼬아 ‘만물근혜설’을 제기했고, 다수의 언론도 이 비판에 가세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어떤 관점을 취한 쪽이든 그를 ‘아버지를 잃은 소녀’이자 ‘여왕’이라는 상징으로 보는 데 이의를 나타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권명아 동아대 교수는 에서 이를 “소녀와 퀸이라는 서로 이질적인 표상과 상징이 대중문화 아이콘과 여성 대통령 사이를 넘나들며 들러붙고 변신하는 (…) 탈근대적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여성 리더의 형상은 홀로 역경을 딛고 세상과 마주해야 하는, 강인하지만 외롭고, 막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언제든 ‘적’의 공격에 위태롭게 노출된 존재”여서 “이 팬심에는 ‘스타’에 대한 동경, 열광과 함께 ‘퀸/소녀’의 위태로움과 연약함을 걱정하는 (가부장적) ‘대리부모’의 정념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여성과 권력에 관한 이런 모순되고 이중적인 시선은 촛불이 낳은 정부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지은이의 판단이다.

여성혐오가 판치고, 성폭력이 아직도 ‘사랑’으로 포장된다.

이와 관련한 문제 제기는 늘 ‘부차적인 것’이거나 ‘대의를 그르치는 것’으로 비난받는다.

지은이는 “공론장의 역사와 패러다임 속에 페미니즘과 젠더 정치의 자리가 존재하지 않았던 역사가 지금 여기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게 문제”라며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적자들’이라는 기이한 가부장적 혈통 계승 서사가 소수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일갈한다.

또 미투 운동, 위안부 피해자, 일제 강점기 이후 공론장, 최근의 대안인문학 운동 등 다양한 분야를 정동(affect) 이론에 근거해 분석함으로써 페미니즘 ‘실천’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역사를 움직인 네트워크들
【기사펼쳐보기】 ‘광장’과 ‘타워’는 두 가지 힘의 형태를 상징한다. 열린 공간인 광장은 수평적 ‘네트워크’를, 타워는 위에서 아...
| 2019.02.22 06:06 |

‘광장’과 ‘타워’는 두 가지 힘의 형태를 상징한다.

열린 공간인 광장은 수평적 ‘네트워크’를, 타워는 위에서 아래로 명령 계통이 이어지는 수직적 ‘위계조직’(hierarchy)을 뜻한다.

위계조직 역시 네트워크의 한 형태라고 보는 게 타당할 터다.

네트워크는 인류가 탄생한 이래 존재해 왔다.

수평적이냐 수직적이냐의 차이는 혼합 정도의 차이일 수 있다.

는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보는 시각을 갖고 있는 보수주의 학자 니얼 퍼거슨(55)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의 책이다.

그는 “최소한 지리상의 발견과 종교개혁의 시대 이래로 역사상의 주요한 변화들이 본질적으로 기성의 위계조직들이 각종 네트워크에 의해 파괴적인 도전에 처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책은 네트워크와 위계조직 간의 투쟁을 역동적으로 그려내기보다 네트워크 이론으로 역사를 설명하는 쪽에 무게가 실려있다.

때문에 ‘누구도 섬은 아니다’ ‘깃털 색깔이 같은 새들은 함께 모인다’ ‘약한 유대는 강력하다’ ‘빈익빈 부익부’ 등 네트워크 이론이 주는 7가지 의미를 짚는 데서 출발한다.

책에서 다루는 네트워크들은 이른바 ‘비밀결사’ 조직들로 불리는 것들이 많다.

1776년 독일 잉골슈타트 대학의 법학교수였던 아담 바이스하우프트가 창설한 ‘일루미나트’와 중세 석공들의 조직에 뿌리를 두고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프리메이슨’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요한 볼프강 괴테(1749~1832) 등이 일루미나트 회원이었다.

지은이는 미국 독립전쟁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네트워크가 프리메이슨이었다고 주장한다.

조지 워싱턴(1732~1799),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 등이 프리메이슨 회원이었다.

또 영국 옥스퍼드 대학 출신들의 이른바 ‘원탁회의’(유치원)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가 가담한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들의 ‘학술문예좌담협회’(사도들)도 다룬다.

그렇다고 ‘음모론’을 편들지는 않는다.

“네트워크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가진 주류의 역사 서술과 그 역할을 습관적으로 과장하는 음모 이론가들 사이에서 길을 찾고자 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밖에도 역사에 영향을 끼친 네트워크로 블룸스버리 클럽, 로스차일드 가문, 서방의 비밀 정보를 소련에 넘긴 ‘케임브리지 5인회’, 알카에다 등 테러조직, 구글, 페이스북 등이 거론된다.

지은이는 15세기 이른바 지리상의 발견과 유럽에서 인쇄술이 도입된 이후 진행된 종교개혁과 계몽주의 시대, 프랑스혁명 때까지를 첫번째 네트워크 시대로 꼽는다.

두번째는 1970년대 시작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인터넷, 소셜미디어 시대다.

그 사이 1790년대 말부터 1960년대 말까지는 위계조직이 다시 통제력을 확보해 네트워크들을 폐쇄하거나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린 시대였다고 본다.

“그 정점에 달한 시점은 바로 20세기 중반으로, 전체주의 체제와 총력전의 시대가 바로 그때였다.

” 독일 나치가 대표적인 예다.

“파시즘 또한 시작은 네트워크였으며, 특히 독일에서는 더욱 그랬다”.

나치의 민족사회주의는 하나의 ‘운동’이었으나, 성장하면서 갈수록 위계적 조직으로 변해갔다.

스탈린이 집권하던 소련도 위계조직의 정점을 찍는다.

페이스북의 사례가 흥미롭다.

“세계를 더욱 개방되고 연결되도록 만드는 사회적 미션을 이루기 위해 생겨났다”는 이 회사의 사무실 벽면에 2008년 이후부터는 “대담하게 앞으로 전진! 자신감으로 충만하라! 세계에 충격을 던져라!”는 “전체주의 국가의 프로프간다들”이 울려퍼지고 있다고 한다.

지은이는 물음을 던진다.

‘오늘날 네트워크가 위계적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좋은 일인가?’ 평가는 부정적이다.

여러 네트워크들만으로 세상이 무리없이 굴러갈 것이라고 믿는 것은 순진하고 “이 세계에 모종의 위계적 질서를 강제해야 하며 거기에 정통성을 부여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 대안으로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뒤처리를 위해 1814~1815년 열린 ‘빈 회의’를 통해 유럽의 5개 강국 체제가 성립돼 이후 유럽의 안정을 가져온 것처럼 새로운 5개 강국 체제 수립을 제안하는 데서 지은이의 면모를 읽을 수 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체 해방 없이 정신 해방 없다
【기사펼쳐보기】 “철학이 단지 상상적인 실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 실존을 가져야만 한다면, 반드시 현실적인 결과를 생산해 ...
| 2019.02.22 06:06 |

“철학이 단지 상상적인 실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 실존을 가져야만 한다면, 반드시 현실적인 결과를 생산해 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철학은 스스로를 무장하기 시작한다.

” 워런 몬탁 미국 옥시덴탈 칼리지 교수는 알튀세르주의 국제 학술지인 의 편집장으로, 인정 받는 알튀세르와 스피노자의 연구자다.

은 국내에 출간되는 그의 첫 저서로, 스피노자의 유물론과 관념론의 타협 불가능한 대립과 투쟁을 복원해내며 스피노자의 해방적 기획을 되살려내는 책이다.

스피노자가 보기에 성서 속의 여러 책들은 일치하지 않으며 일관되지 않고 모순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기에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런 당혹스러운 사태에 대한 불안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성서 바깥에 교리 체계를 만들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성서의 신성함은 그것이 독자의 헌신이라는 결과를 생산하는지를 통해 판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스피노자의 성서 해석학을 몬탁은 “문자의 유물론”이라 부른다.

“스피노자의 철학에 방대한 힘을 주는 것은 정확하게 해결의 부재, 끝나지 않는 논제들의 누적, 유예된 논증들 그리고 대체로 그의 논증들의 알갱이에 반하여 예기치 않게 등장하며 설명되지 않지만 잊을 수 없는 어떤 이미지들이다.

그의 철학은 언제나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쓰인 것으로 남아 있다.

만약 우리가 그런 이유로 스피노자의 사유들을 그것들에 어떤 한계나 경계를 부과하지 않고 그 자체로 사유되도록 허용한다면 그것들은 우리를 거의 상상할 수 없게 어려운 해방의 길로 떠나도록 할 것이다.

” 언어의 유물론은 언어가 신체들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에 주목한다.

전제정치의 비밀은 정신들을 설득하는 능력이 아니라, 군주의 이익을 위해 신체들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에 있다.

그 능력으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에게 불이익이 되는 일을 하기를 스스로 욕망하는 데까지 이른다.

에서 메데이아의 말처럼 “나는 더 나은 것을 보고 그것에 찬성하지만, 더 나쁜 일을 하고야 만다.

”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배자들이 언제나 “대중에 대한 공포”를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중들은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하며 게다가 그들의 경제적 능력에서 보자면 사회생활에 필수적이다.

그들은 모든 국가가 그 위에 건설되는 심연이다.

” 전적으로 불합리한 명령을 내리는 군주가 드문 이유도 이 때문이다.

몬탁은 토머스 홉스와 존 로크의 저작에서 나타나는 모순들을 짚어가며, 이 모순 속에서 이 둘의 정치적 기획의 ‘부재하는 중심’인 다중의 존재를 읽어낸다.

동시대 철학자인 홉스, 로크와 달리 스피노자는 대중에게 역사의 중심적인 자리를 부여한 철학자였다.

스피노자는 로크와 홉스의 정치적 개인주의를 거부했다.

그 이유는 그가 역량과 권리를 분리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를 역량이라고 생각하면, 개체는 유의미한 분석 단위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그렇다면 중심적 사회관계는 국가와 개체가 아닌 국가와 다중 사이에 있는 것이다.

만약 사회를 자본가와 노동자처럼 ‘평등한’ 개인 간의 ‘자유로운’ 상호작용으로 보는 정치적 개인주의 또는 자유주의를 신체의 유물론과 부딪히게 한다면,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몬탁은 이를 두 가지 간명한 명제로 정리한다.

“신체의 해방 없이는 정신의 해방은 있을 수 없다.

” 그리고 “집합적 해방 없이는 개체의 해방은 있을 수 없다.

” “신체를 다시 도입하는 것은 의식을 잠에서 깨우고, 자신들의 행위를 결정하는 힘들을 알지 못하므로 행위들을 바꿀 수도 없으면서 그들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 자신들이라며 꿈꾸고 있는 개인들을 정치적 몽유병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이다.

”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삶의 성리학자 임윤지당
【기사펼쳐보기】 조선 후기에는 성리학을 내재화한 여성들이 등장하여 자신의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는 신사임당·황진이·허난설헌 등 16세기...
| 2019.02.22 06:06 |

조선 후기에는 성리학을 내재화한 여성들이 등장하여 자신의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는 신사임당·황진이·허난설헌 등 16세기 여성들이 예술로 이름을 얻은 것과 비교된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기란 개인의 성향과 능력에 따른 것이지만 시대의 역할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성리학의 발달과 확장은 여성을 규범 속에 가두는 대신 지적 욕구를 자극시키게 되는데, 그 안에서 자기 길을 찾는 여성들이 나온다.

성리학자로 호명되는 임윤지당(任允摯堂, 1721~1793)이 그 대표주자다.

그녀는 자연과 인간의 이치를 탐구하는 보편지식의 세계에 도전하여 보고서를 남긴다.

윤지당은 이기심성설, 예악설, 사단칠정론 등 조선 후기에 유행한 성리학적 주제들로 사유 영역을 넓히면서 문제적 역사 인물들을 새롭게 해석하는 등, 그 시대 지성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렇다면 사색과 성찰을 주무기로 하는 성리학, 그 길을 그녀가 가게 된 계기와 그녀가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묻는 것은 여성에게 그 시대 성리학의 담벼락은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즉 “독서와 강론은 장부의 일이고 끼니와 의복 공양, 제사와 손님접대는 부인의 일”로 명시된 사회였다.

또 “부인으로서 바느질과 음식을 모른다면 장부로서 시서(詩書)와 육예(六藝)를 모르는 것과 같다”고 하던 시대였다.

녹문 임성주(1711~1788)의 동생으로 태어난 윤지당은 형제들 틈에서 익힌 경서 공부로 평생을 밝힐 줄은 그 자신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양반가 여성의 삶이란 며느리와 아내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자녀들을 낳아 기르는 가운데 의미를 찾는 그런 것이다.

조금 익힌 문자는 삶을 윤택하게 하는 정도이지 내 삶을 걸 정도의 비중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운명은 윤지당을 평범하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혈육 한 점 없이 남편과 사별한 그녀, 화두는 이 절박한 현실을 어떻게 뚫을 것인가였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타고난 운명이 박복하여 환과고독(鰥寡孤獨) 중에서 세 가지를 갖추고 있다.

앞으로 보고 뒤로 보아도 위안 삼을 만한 것이 그 어디에도 없다.

”((忍箴)) 남편과 부모와 자식, 의지할 데라곤 하나도 없는 이 절대 고독 속의 나는 누구인가? 윤지당은 이 화두를 붙들고 정진하고 또 정진한다.

“하늘이 나에게 이처럼 가혹한 것은 마음을 분발시키고 인고(忍苦)의 성품을 길러 주시고자 한 것이 아닐까?” 학문으로 세상을 풍미하고자 한 대다수 남성들의 욕망과는 달리 여성 윤지당의 성리학은 ‘살아있기’ 위한 현실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내가 나일 수 있을까? 윤지당의 연구는 경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으로 자기 존재에 대한 주체 의식이 강하게 흐르고 있다.

그녀는 “성인(聖人)과 나는 동류(同類)”임을 선언하고 “남이 한 번 힘쓸 때 나는 천 번을 힘써 성인이 될 것”을 다짐한다.

성인으로 가는 그녀의 길은 치열했다.

“아! 빛난다 비수여, 나를 부인이라 여기지 말라.

네 칼날을 더욱 예리하게 다듬어 숫돌에 새로 간 것처럼 하라.” 혼자 남은 방에서 사투를 벌이는 그녀의 학문열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윤지당의 시동생 신광우는 “우리 가문에 시집오신 후로 서적을 가까이하는 기색이 없었고, 일상생활에서도 문장이나 학문에 관해 언급하는 일이 없었다.

”고 한다.

그녀는 장부의 일이라는 경학 연구에 시선의 부담을 느꼈던 것이다.

혼자 한 공부가 일정한 수준에 이르자 오빠 임성주와 서신 토론을 통해 자신의 연구를 객관화하는 작업을 한다.

노년에 이른 그녀.

“사색은 정밀하고 마음을 보존하는 것은 철저하며 지혜는 밝고 행실은 수양되어 표리가 한결 같으셨다.

순수하고 안정된 경지를 성취하신 것은 오래 덕을 쌓은 큰 선비와 같았다.

” 윤지당의 형제들은 그녀가 장부가 되지 못함을 한탄했다.

그것은 남자에게도 어려운 지성의 고지를 탈환했다는 뜻이다.

여기서 여자의 삶과 병행하기 어려운 당대 지식의 성격을 묻기보다 남성 지식세계의 일원이 되고자 한 윤지당의 성리학이 살짝 아쉽기도 하다.

역사적 존재가 지닌 한계로 볼 수도 있겠다.

처음에는 남몰래 했던 공부가 차곡차곡 쌓여지자 그녀는 연구 업적에 애정이 갔다.

“죽은 후에 장독이나 덮는 종이가 된다면 또한 비감한 일이 될 것”이라던 우려와는 달리 그녀 사후 형제들에 의해 70여생의 사색과 성찰이 담긴 가 간행되었다.

그녀에게 위기는 오히려 새 길을 찾는 기회였다.

규범을 벗어난 현실을 규범을 넘어선 삶으로 자신을 바꾼, 임윤지당이야말로 여성 지성의 역사를 연 앞선 여자이다.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꼰대 같은 조언에 왜 빠져드나
【기사펼쳐보기】 제목부터 우선 지루하다. 목차를 읽으면 잔소리 일색이다. 내용은 지나치게 평범하다. 그런데도 <12가지 인생의 ...
| 2019.02.22 06:06 |

제목부터 우선 지루하다.

목차를 읽으면 잔소리 일색이다.

내용은 지나치게 평범하다.

그런데도 <12가지 인생의 법칙>은 베스트셀러 고공행진 중이다.

힐링 에세이가 점령했던 서점가에 지난해 말 혜성처럼 등장한 <12가지 인생의 법칙>.

워낙 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일으킨 책이라 얼마간 인기를 끌 것이라고 짐작됐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

출판 종사자들조차도 “꼰대 같은 조언을 늘어놓고 있는 이 책이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지 모르겠다”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런데 요즘 대세인 유튜브에 들어가 보면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저자인 조던 피터슨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는 180만명을 넘어섰고, 누적 조회 수는 7500만회에 달한다.

‘12가지 인생의 법칙’이란 검색어를 입력하면, 북튜버들이 올린 리뷰 영상, 강의 요약 동영상, 카드 뉴스 동영상, 12가지 인생의 법칙을 1가지씩 나누어 소개하는 동영상 등, 국내에서 만들어진 동영상만도 수백개에 달한다.

유튜브에서 시작된 피터슨의 인기는 유튜브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12가지 인생의 법칙>은 전형적인 영미권 자기계발서다.

‘법칙 1.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 ‘법칙 3.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만 만나라’ ‘법칙 4.

당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당신하고만 비교하라’ ‘법칙 5.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처벌을 망설이거나 피하지 말라’ ‘법칙 6.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

책에 소개된 법칙들 몇 개만 읽어도 약간의 거부감이 생긴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이거나 혹은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다가도 도발적이고 논쟁적인 주장에는 솔직히 불편함을 감출 수 없다.

피터슨은 포스트모더니즘을 거부하고, 마르크스주의를 경멸하며,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거침없는 그의 주장에 대해 여러 반론의 목소리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진보주의자는 ‘세상을 바꾸자’고 하고, 보수주의자는 ‘나 스스로를 바꾸자’고 한다.

보수주의자인 피터슨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서는 애써 언급하지 않는다.

우리 앞에 고통으로 가득 찬 인생이 펼쳐져 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를 바꾸면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나 스스로를 바꾸자’는 주장만 되풀이한다.

힘겨운 상황이라도 움츠러들지 말고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고 훈계한다.

어깨를 펴는 것만으로 세로토닌 분비가 활성화되고 자신감이 상승하며,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고 주변 사람들이 나를 강자로 인식하게 된다는 식의 주장은 제법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12가지 인생의 법칙>은 이러한 방식으로 나약해진 인간의 심리를 파고들며 혼돈의 시대를 헤쳐 가는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가치관이 붕괴되고 세대 간 갈등이 격화되는 등,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표류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

그들 손에 쥔 나침반이 지금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가늠해보자.

북칼럼니스트, BC에이전시 대표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의젓한 미숙아, 우린 모두 미숙아야
【기사펼쳐보기】 이 만화의 추천사에 소설가 황정은은 “가난의 모습은 홀쭉하지 않다”고 썼다. 만화가 정원의 첫 장편인 은 “냄새와...
| 2019.02.22 06:06 |

이 만화의 추천사에 소설가 황정은은 “가난의 모습은 홀쭉하지 않다”고 썼다.

만화가 정원의 첫 장편인 은 “냄새와 흉터와 눈치와 질병과 자책 같은 것”들로 “불룩한 가난의 주머니”를 헤쳐가며 어른이 된 1980년대생 소녀 ‘장미숙’의 성장기다.

밖에선 “시대를 성찰하는 시인”으로 평가받는 아버지는 실제론 엄마에게 손찌검을 일삼는 주정뱅이다.

언니 ‘정숙’은 언제부턴가 엇나가며 동생을 학대하고, 짓궂은 학교 친구들은 ‘미숙아’라고 부르며 따돌린다.

미숙은 움츠러들긴 하지만 나빠지진 않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허벅지를 꼬집는 언니의 아픔을 응시하고, 어머니의 한숨에 귀 기울이며, 아버지가 ‘진돗개’라며 들여왔다 ‘똥개’로 판명 나자 곧 외면해버린 강아지 ‘절미’를 돌본다.

하지만 모든 만남엔 자국이 남는다.

어느 날 갑자기 장검 찬 기사처럼 나타난 친구 ‘재이’로 인해 새로운 세상을 맛보지만, 사랑과 우정의 그 어디쯤 있었을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미숙을 옭매었던 과거의 관계가 스웨터 올 풀리듯 지나간 자리.

엄마는 미숙에게 봉투를 건넨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집어 던진 법정 스님의 책 에 맞아 뺨에 생긴 흉터를 치료하라는 돈이었고, 미숙은 “기쁘게 받는다.

” 삶이란 자기 몫의 미숙함을 머리에 이고 한해, 한해를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그 길을 걷다가, 뭐가 들어있을지 알 수 없는 불룩한 주머니를 만나더라도 ‘나’를 잃지 않는 것.

상실의 절망에서도 ‘푸르른 틈새’를 바라보는 것.

수많은 인생의 미숙아들에게 주인공이 전하는 은근한 메시지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슬픈 알바트로스
【기사펼쳐보기】 제가 미드웨이섬에 처음 간 것은 플라스틱을 먹고 죽어가는 새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는 알바트로스가 섬을 다...
| 2019.02.22 06:06 |

제가 미드웨이섬에 처음 간 것은 플라스틱을 먹고 죽어가는 새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는 알바트로스가 섬을 다 떠난 시기였기 때문에 섬에는 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알바트로스만 가득했지요.

(…) 저는 엄청난 절망감과 무기력, 우울함에 빠져들었고, 미드웨이섬에서 도망치듯 나왔습니다.

(사진 ⓒ크리스 조던)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평론가, 에스에프에 손을 내밀다
【기사펼쳐보기】 ‘SF는 공상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이 겨냥하는 바는 명확하다. 에스에프(SF)를 생각 없이 ‘공상과학소설’이라 새...
| 2019.02.22 06:06 |

‘SF는 공상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이 겨냥하는 바는 명확하다.

에스에프(SF)를 생각 없이 ‘공상과학소설’이라 새기는 관습에 대한 문제 제기인 것이다.

에스에프를, 과학을 빙자한 허황한 공상 정도로 치부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에스에프의 상상은 생각보다 과학적 근거에 충실하다.

의 지은이 복도훈( ·서울과학기술대 문창과 교수)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공상’과학소설이냐 ‘과학’소설이냐 하는 구분보다 그에게 더 긴요한 것은 이른바 본격문학과 장르문학 사이의 관계 설정이다.

책 맨 앞에 놓인 글 ‘SF, 과학(Science)과 픽션(Fiction) 사이에서’에서 그는 허버트 조지 웰스의 에스에프 소설 (1898) 이야기를 꺼낸다.

화성 생명체의 지구 방문을 소재로 삼은 이 소설에서 외계 생명체를 대하는 두 가지 태도를 대변하는 이들이 목사와 군인이다.

목사에게 화성 생명체는 메시아의 대리인으로 환대해야 하는 존재인 반면, 군인에게는 싸워서 물리쳐야 할 적으로 간주된다.

이 두 가지 태도가 본격문학과 에스에프 사이의 관계에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가령 “(에스에프의) 가능성들을 문학이 적극적으로 흡수해 들인다면, SF 장르는 문학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심화하는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는 평론가 박진의 발언은 에스에프를 일종의 문학적 식민지로 여기는 기존 문학의 불순한 의도를 드러낸다는 게 복도훈의 판단이다.

반대로, 듀나의 인터뷰 이후 에스에프 독자들이 잡지에 대해 표출한 항의와 불만은 본격문학의 그런 태도를 에스에프에 대한 ‘침략’과 ‘정복’ 시도로 간주하는 피해의식을 보여준다.

국내 최초의 에스에프 평론집을 표방하는 이 책에서 지은이는 듀나, 복거일, 윤이형, 배명훈 등의 에스에프 작품과 함께 북한 에스에프와 영화 , 그리고 딕, 러브크래프트, 밸러드 등의 번역 소설도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다.

복 교수는 와 통화에서 “본격문학과 에스에프의 관계가 여전히 거리가 있고 불편한 게 사실이지만 최근 들어 서로의 문학적 시민권을 상호 승인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며 “나 역시 본격 에스에프를 대상으로 한 평론과 강의 등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복도훈 제공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봄 편지
【기사펼쳐보기】 곽 재 구 강에 물 가득 흐르니 보기 좋으오 꽃이 피고 비단 바람 불어오고 하얀 날개를 지닌 새들이 날아온다오 아시오...
| 2019.02.22 06:06 |

곽 재 구 강에 물 가득 흐르니 보기 좋으오 꽃이 피고 비단 바람 불어오고 하얀 날개를 지닌 새들이 날아온다오 아시오? 바람의 밥이 꽃향기라는 것을 밥을 든든히 먹은 바람이 새들을 힘차게 허공 속에 띄운다는 것을 새들의 싱싱한 노래 속에 꽃향기가 서 말은 들어 있다는 것을 당신에게 새들의 노래를 보내오 굶지 마오 우린 곧 만날 것이오 -시집 (문학동네)에서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먹고 먹히는 ‘영어’의 파란만장 대모험
【기사펼쳐보기】 영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모국어 화자를 지닌 언어가 아니다. 만다린 중국어(북경어)의 모국어 화자는 10억명이 ...
| 2019.02.22 06:06 |

영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모국어 화자를 지닌 언어가 아니다.

만다린 중국어(북경어)의 모국어 화자는 10억명이 넘는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이들은 3억8천만명쯤 되고, 제2언어나 제3언어로 사용하는 이들까지 합쳐도 7억명이 채 못 된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영어는 ‘세계어’다.

러시아어를 쓰는 사람과 말레이어를 쓰는 사람이 만나면 영어로 대화한다.

각종 국제기구의 공식어 중 첫 번째 언어이며, 인터넷에서 통용되는 언어의 70%를 차지한다.

영어의 경제적 가치는 4조2710억파운드(약 6171조원)로 중국어(4480억파운드)는 물론 독일어(1조9천억파운드)나 일본어(1조2770억파운드)와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대체 어떻게, 영어는 세계 최고의 히트상품이 될 수 있었을까.

영국의 작가이자 (BBC) 방송국 프로듀서인 멜빈 브래그의 은 이 질문에 대한 방대하고 흥미진진한 해설서다.

저자는 일찍이 이라는 25부작 라디오 시리즈와 이라는 8부작 티브이 시리즈를 제작·방영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를 토대로 집필한 은 ‘영어’를 주인공 삼아, 15만명이 쓰던 변방의 언어가 15억 세계인의 언어가 되기까지 1600여년에 걸친 모험과 성장을 그린다.

원인도유럽어를 어머니로 둔 영어는 약 4천년 전 인도의 평야지대 어딘가에서 탄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쪽으로 한참을 달린 끝에 멸망한 로마제국의 영토를 지키던 게르만 용병들을 만났고, 이들과 함께 5세기 브리타니아라 불리던 영국에 도착했다.

강인하고 무자비한 게르만 전사들은 켈트어를 학살하고 켈트인을 노예로 만들며 그 땅의 주인이 됐다.

You, man, is 등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사용빈도가 높은 100개의 영어단어 대부분이 당시 사용되던 고대영어에서 왔다.

7세기 들어 24개의 고유한 문자(알파벳)까지 장착하며 승승장구하던 영어의 창창한 앞날을 가로막은 것은 북쪽에서 몰려온 바이킹 전사들이다.

8세기부터 300년 동안 끊임없이 들이닥친 바이킹 가운데 특히 데인족(덴마크인)은 문서자료를 약탈하고 도서관을 불태우며 영어를 고사 직전까지 몰고 갔다.

영리한 왕 알프레드는 게릴라전으로 데인족을 제압하는 한편 영어를 ‘단결의 구심’으로 삼아 국난을 극복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그가 영어를 널리 가르치고 영어책을 부지런히 펴낸 덕분에 영어는 첫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200년도 안 돼 프랑스어를 쓰는 노르만족이 침략하면서 영어는 다시금 ‘파멸의 위기’를 맞는다.

이후 300년 동안 고대영어의 85%가 사라지고 1만여 개에 달하는 프랑스어가 영어를 잠식했다.

지배계급이 재빨리 프랑스어를 받아들이는 사이 영어는 민중들 사이에서 ‘저항의 언어’로 명맥을 이어갔다.

흑사병과 농민반란을 겪으며 ‘왕의 언어’라는 지위를 간신히 되찾은 영어는 바티칸과 최후의 사투를 벌인다.

라틴어로 된 성경을 번역해 영어 성경책을 편찬하는 일은 부패한 가톨릭에 맞선 종교개혁 운동의 일환이기도 했다.

사재를 털고 목숨을 걸어가며 영어 성경책을 만든 이들과 급격히 발달한 인쇄술에 힘입어 결국 하느님마저 제편으로 만든 영어는, 그 귀한 영어 성경을 가슴에 품은 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이들 덕분에 세계정복이라는 원대한 포부를 가질 수 있었다.

한때 핍박받는 언어였던 영어는 일단 지배적 위치에 놓이자 게걸스런 포식자가 되어 세계 곳곳의 언어를 닥치는 대로 집어삼켰다.

영어의 가장 큰 경쟁자였던 프랑스어는 어휘 수집과 신조어 생산에서 가장 만만한 텃밭이었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 같은 유럽 언어는 물론 말레이어, 페르시아어, 터키어, 힌디어, 아랍어도 영어의 먹잇감이 됐다.

“영국 선원들이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무역을 하는 동시에 언어를 약탈해 왔”던 것이다.

지식인들은 이탈리아의 건축과 예술, 음악에 압도돼 그 언어를 슬쩍 훔치는가 하면, 스러져가는 라틴어를 소환해 영어사전에 제 것인 양 올려두기 일쑤였다.

산업혁명을 계기로 영어는 과학과 기술의 언어로 부상했고, 수학자와 과학자 들은 논문을 쓰기 위해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 대신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 언어는 힘의 지원이 있을 때 세계적인 언어가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라틴어가 국제적인 언어가 된 것은 로마인들이 수적으로 우세했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강한 육군을 보유한 힘센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영어가 전파된 것은 “무기와 해상력을 통해 권력을 쟁취한 후 교역을 통해 이를 계속 유지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건너간 언어가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였다면, 언어의 판도는 지금과 전혀 달랐을 것이다.

세계 최대의 상품생산 기지이자 교역국이며 첨단 과학기술의 진지로 부상한 미국은 영어 종주국으로서 영국의 자리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20세기 들어 미국의 브랜드, 대중가요, 영화, 티브이 프로그램이 전 세계를 강타했고, 영국 청년들까지 미국의 ‘흑인영어’로 노래하며 춤추는 시대가 왔다.

마하트마 간디는 영국의 식민지배 당시 인도에서 ‘특권과 승진의 언어’로 여겨지던 영어를 배우는 것이야말로 자국민을 노예로 만드는 길이라 믿었다.

그런데 인도의 독립 이후 영어로 작품을 쓴 인도 소설가들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큰 성공을 거뒀다.

차별과 핍박의 도구였던 영어가 ‘세계로 열린 창’ 역할도 한 것이다.

오늘날 인도 영어는 영국 영어나 미국 영어와는 또 다른 언어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싱가포르식 영어인 ‘싱글리시’는 정부의 규제에도 아랑곳없이 점점 더 널리 쓰이는 추세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현지 단어들이 표준영어와 어우러져 ‘새로운 영어의 탄생’을 예고한다.

저자는 “영어의 미래가 더 이상 선조들이 아니라 영어를 제2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영어가 다른 많은 언어에서 단어를 가져오고 시험해보고 빨아들인 것처럼, 이제는 다른 언어들이 영어를 가져다가 구부리고 적절하게 만들면서 영어를 통해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기사펼쳐보기】 아메리카 신대륙 원주민(소위 인디언)의 기원은 신대륙이 서구 사람들에게 처음 발견된 이래 400여년을 끌어온 논쟁이다. ...
| 2019.02.22 06:06 |

아메리카 신대륙 원주민(소위 인디언)의 기원은 신대륙이 서구 사람들에게 처음 발견된 이래 400여년을 끌어온 논쟁이다.

초창기 신대륙의 풍물을 기록한 호세 데 아코스타(1540~1600) 예수회 신부가 에서 이들을 아시아 어딘가에서 난파된 사람들이라고 말한 이래, 원주민이 아시아 대륙에서 건너왔다는 것은 정설이 되었다.

실제로 마야문명에서 보이는 여러 유물의 특징은 동북아시아의 선사시대와 많은 유사점이 보인다.

이를 들어서 중국에서는 신대륙의 발견자가 중국인이라는 주장이 꽤 강하게 등장하고 있다.

한편, 미국에 정착한 백인 이주민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신대륙의 기원을 두고 엇갈리는 다양한 이야기의 속사정을 살펴보자.

1620년 메이플라워호가 기착한 이래 신대륙의 백인 이주민들은 원주민들을 미개하고 열등한 사람들로 간주했다.

우리가 서부영화에서 봐왔듯이 원주민들을 잔인하게 몰아냈다.

그런데 초기 정착민들이 주로 거주했던 미국 동북부 지역에서 이해할 수 없는 유적들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마치 뱀처럼 긴 모양을 한 무덤과 다양한 거대한 고분들이 발견되는 것이 아닌가.

그중에는 황남대총의 1.5배 정도인 엄청난 규모도 있었다.

백인 이주민들로서는 미개하고 열등한 원주민들이 문명의 흔적인 거대한 고분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에 백인 이주민들은 이 무덤을 만든 사람들은 현재의 아메리카 원주민이 아니라 지금은 사라져버린 백인들이라는 설을 주장했다.

그 유력한 후보는 바다에 침몰한 아틀란티스 대륙의 후예설, 히브리인, 스키타이인, 바이킹 등이었다.

19세기 중반에 미국에서 시작된 모르몬교는 기원전 6세기경에 이스라엘의 한 지파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와서 1천년간 살았다는 교리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의 시대 배경을 엿볼 수 있다.

‘마운드 빌더’(무덤을 만든 사람)라는 이 황당한 논쟁이 정작 미국에서는 진지하게 200여년간 이어졌다.

심지어 미국 제3대 대통령을 역임한 토머스 제퍼슨마저 자기 농장에 있는 고분을 직접 발굴할 정도였다.

20세기 초반이 되어서야 북미에 남겨진 거대한 고분은 바로 그들이 경멸하던 원주민들의 조상이 만들었다는 당연한 사실이 인정되었다.

미국같이 실용적이며 과학 문명이 발달한 나라에서도 이렇게까지 어처구니없는 미신에 집착했을까 어이가 없다.

아마도 백인 이주민들은 신대륙을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라는 확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멕시코 이민자들을 장벽을 쌓아서라도 막겠다는 미국 정부와 그를 옹호하는 백인 지지층의 머릿속에 그런 인식은 여전히 숨어있다.

또 다른 신대륙 발견자를 자처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청나라 말기부터 신대륙에 대한 정보가 알려지면서 ‘진시황에게 불사약을 구하겠다고 하고 사라져 버린 서복(徐福 또는 서불)의 기착지가 신대륙’이라는 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고대 중국의 지리서인 에 기록된 동쪽 바닷속 해 뜨는 나라인 ‘부상’(扶桑)이 지금의 아메리카 대륙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런 막연한 추정은 1928년에 은허(殷墟)에서 발굴된 상나라의 청동기였다.

미국의 고고학자들은 미국 북서부 인디언 예술품과 상나라의 청동기가 너무나 유사하다는 점에 놀랐다.

저명한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학자는 구체적인 이동 경로가 없기 때문에 인류의 문화발달 과정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현상이라는 해석을 했다.

하지만, 이후 신대륙에서 기원전 1200년경에 갑자기 등장해서 사라진 올멕 문명이나 암각화를 상나라와 연결하는 등 “상나라 미국 이주설”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정화의 원정대가 아프리카뿐 아니라 전 세계를 탐험했다는 연구와 함께 거대한 중국을 지향하는 중국인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한편, 일본과의 관련성도 일찍이 1960년대에 제기된 바가 있다.

1960년대에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메거스-에번스 부부 고고학자는 에콰도르의 발디비아 문화가 일본 조몬토기에서 기원했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사실 이들이 말하는 조몬토기는 한국에서 주로 출토되는 빗살무늬토기과 번개무늬토기에 더 가깝다.

이 역시 미국 고고학계에서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었다.

다만 최근에 환태평양의 문화교류에 대해 다시 논의가 일어나며 시베리아의 신석기 연구자들 사이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냉전이 사라지고 지역 간 교류가 활발해진 덕분이다.

고고학과 유전자의 연구는 일관되게 남부 시베리아의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기원전 1만5천년을 전후해서 베링해를 넘어가 점진적으로 미 대륙으로 퍼져나갔다고 증명한다.

즉, 시베리아 기원설인 셈이다.

게다가 신대륙으로 넘어간 기원전 1만5천년 전후의 사람들은 이미 구석기시대에 제사, 토기, 예술 등 문명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그러니 양 대륙에서는 동일한 후기 구석기시대의 문화적 배경에서 발원한 유사한 유물들이 나올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중국고고학을 전공했던 대만 출신의 장광즈 교수는 두 대륙 간의 공통점을 모두 샤먼을 주축으로 하는 제사 중심의 사회라는 차원에서 접근했다.

세계 문명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근동과 인더스의 문명은 전쟁, 행정 그리고 교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반면에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신대륙 일대는 제사와 그것을 주관하는 신관, 즉 샤먼이 문명의 주축이 되었다.

구석기시대 이래 종교적 전통이 잘 남아 있는 두 대륙의 예술품과 종교에 유사점이 보이는 것이다.

이를 ‘아시아-아메리카 샤먼문화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구석기 시대 이후 다양한 시기에서 유사한 유물들이 돌출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극동 시베리아와 신대륙 사이의 섬들을 따라 이루어지는 해상 교류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 측의 학자들은 신석기시대 극동과 캄차카 지역의 조각상들이 마야와 북미의 조각상들과 유사하다는 연구를 내어놓고 있다.

아직 대륙 간 해상교류는 여전히 초보적이고 너무나 광활한 지역에서 단편적인 비교이다.

그렇지만 최근까지도 환태평양의 원주민들은 사할린에서 캄차카반도를 거쳐서 알류샨열도와 알래스카로 이어지는 네트워크를 형성해왔다.

이렇게 연해주와 캄차카를 따라 신대륙으로 이어지는 환태평양의 문화교류는 두 대륙 사이의 문화교류에 해답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아시아와 신대륙의 문화 교류관계는 이제 초보적인 연구 단계이다.

한동안 미국 고고학계에서는 원주민들의 기원을 연구하는 데에 극도의 저항감을 보였다.

미국 주요 도시나 대학의 박물관들은 유럽과 근동의 유물들은 미술관에 전시했고, ‘인디언’으로 부르던 신대륙 원주민의 유물은 자연사박물관에서 전시했다.

신대륙의 선사시대 연구는 자기들이 몰아낸 원주민의 역사이기 때문에 백인들의 역사와 분리하여 역사학이 아닌 인류학과에 소속시켰다.

게다가 신대륙 원주민의 고향인 시베리아와 중국은 냉전 시기 그들과 대립하던 공산주의권 나라였으니 제대로 된 연구가 어려웠다.

다행히도 21세기에 들어서 각 지역의 정보가 풍부해지고 지역 간 장벽이 사라지면서 원거리의 교류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지고 있다.

게다가 유전자 분석으로 지역 간 교류의 흔적은 꽤 구체적으로 추적되고 있다.

대륙 간의 문화교류를 선입견으로 색안경을 낄 필요는 없다.

유라시아에서 만리장성 북쪽의 흉노가 동유럽까지 가고 고구려의 기마술이 유라시아 각지로 확산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신대륙에도 수많은 사람의 문화가 교류했을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다만 교류의 구체적인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연구와 논증이 필요하다.

해상을 기반으로 한 대륙 간 문화교류의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이다.

신대륙은 면적만 한반도 200배에 달한다.

그러니 신대륙의 고대 문화는 엄청나게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한 국제적인 연구이다.

하지만 신대륙의 동아시아 기원설을 주장하는 연구자 중에서 제대로 신대륙의 고고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의욕만 앞섰는지, 무리하게 몇 가지 언어적 유사성을 주장하여 그 신빙성에 의심이 가게 하는 경우도 많다.

전 세계적인 고대 문화의 네트워크를 밝힐 수 있는 실마리를 어설프게 엮는 것은 오히려 연구에 장애가 된다.

궁극적으로 신대륙이라는 고대 문화 연구의 ‘미지의 땅’을 ‘무지의 땅’이 되게 하지 않으려면 선입견이 없는 신중한 연구가 필요하다.

경희대 사학과 교수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어떤 과거를 상속할 것인가?
【기사펼쳐보기】 그의 유고작 (일명 ‘역사철학테제’)에서 베냐민은 전승을 둘러싼 투쟁의 성좌(星座)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운...
| 2019.02.22 06:06 |

그의 유고작 (일명 ‘역사철학테제’)에서 베냐민은 전승을 둘러싼 투쟁의 성좌(星座)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운명을 규정할 것이라고 말한다.

어떠한 전승을 이어받을 것인가, 어떠한 과거를 기억하고 애도할 것인가 하는 물음은 현재의 지평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축을 형성한다.

이런 의미에서 과거는 죽은 것이 아니며, 언제나 자신이 지닌 미완의 과제를 현재 속에 제시한다.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을 중심으로 대중을 동원하기 위해 5·18 항쟁을 폄훼하고 그 유가족들을 ‘괴물’로 지칭한 어떤 정치인들 역시 특정한 방식으로 과거의 이미지를 소환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과거에 ‘감정이입’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과 간첩들의 손에 넘어갈 뻔했던 국가를 구출해낸 ‘주권자’의 결단을 예찬하면서 말이다.

그들은 오늘날 ‘현재와 더불어 사라지려 하는 과거의 복원할 수 없는 이미지’를 아예 지워버리고자 한다.

이에 반해 ‘억압받는 사람들’의 전통에서 역사를 고찰하는 사람들은 과거 세대와 오늘날의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희미한 메시아적 약속’에 주목한다.

오늘날 그것은 과거에 쓰러져간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애도하는 회상(Eingedenken)의 정치가 필요함을 말해준다.

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베냐민 강의록에서 고 김진영 선생은 폐허가 된 과거의 이미지로부터 희미한 메시아적 힘을 읽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베냐민이 바라보는 당대의 상황은 “적법한 상속자들이 상속권을 박탈당했는데, 적법치 못한 이들이 스스로를 적법자라고 주장하며 지배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벤야민은 지배와 피지배의 문제를 전통과 상속의 문제로 읽어 내려” 시도했던 것이다.

즉 어떠한 과거의 전승을 상속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자신의 시대를 고찰하는 역사가와 알레고리커(Allegoriker)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과제인 것이다.

이 책은 지난해 8월 작고한 저자가 2012년 인문학박물관에서 진행한 “벤야민과 근대성의 좌표”라는 제목의 연속 강좌 녹취록을 정리해 발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단지 베냐민을 소개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 책은 그 소개과정에서 드러나는 저자 자신의 에세이집으로 이해되고 또 그렇게 읽혀야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베냐민 사상에 대한 소개서이면서 동시에 독자적인 저자 자신의 에세이집이기도 한 것이다.

고인의 강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문학적인 언어감수성과 구사력이 탁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저자의 언어를 활자화된 텍스트로 접할 때, 이는 독자를 전율케 하는 또 다른 힘으로 나타난다.

베냐민적인 언어, 개념, 표현들은 저자에 의해 새로이 해석된 에세이적 언어로 재창조된다.

내용 면에서도 독자를 흥미롭게 만드는 부분들이 돋보인다.

베냐민의 생애를 다룬 첫 장은 영화 이미지들이 스쳐지나가듯 베냐민의 짧고 강렬한 삶을 소개하는데, 시중에 나와 있는 어떠한 베냐민 입문서들보다도 상세하게 그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2장은 ‘베냐민의 초상’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베냐민의 시기별 초상 사진들을 통해 그의 삶을 재조명한다.

이외에도 8강에서 전개되는 베냐민의 사진, 영화론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탁월한 전달력을 보여준다.

이는 그가 롤랑 바르트, 리오타르 등 현대 매체이론가들에 조예가 깊었으며, 프루스트, 스탕달 등 문학사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력을 가진 연구자였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밖에 , 등 베냐민의 난해한 에세이들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베냐민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나는 언어의 화려함보다는 개념의 해석과 사용의 엄밀성을 더 중시할 수밖에 없는 철학적 배경에서 베냐민과 아도르노를 공부했다.

그래서 이렇게 에세이적 언어와 감성, 문학적 감각 속에서 철학 개념들을 해석하는 서술방식은 나에겐 낯선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와 김진영 선생이 베냐민 텍스트를 읽어내는 방식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베냐민은 ‘결단’을 강조하고, 이와 대조적으로 아도르노는 ‘망설임’의 자세를 취한다는 설명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도르노가 일관적으로 강조하는 ‘비판적 거리두기’란, 우리의 행동 속에서도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한 ‘반성적 정지’라는 관점에서 베냐민적인 ‘정지상태’의 모티브를 이어받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되돌아보기 위한 정지’는 본래 마르크스가 에서 두더지의 이미지를 통해 제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을 ‘망설임’이라는 표현으로 담아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저자가 베냐민의 ‘신적 폭력’ 개념을 과도하게 아감벤적 관점에서 해석한 것도 필자와 의견이 다른 부분이다.

그러나 고인과 필자 사이의 이 ‘다름’은 결코 ‘옳고 그름’을 나타내지 않는다.

고인이 이 책의 활자 속에 우리에게 들려주는 숨막히는 문장과 표현들은 우리의 성찰을 자극하며, 그 자체로 우리에게 남겨진 값진 유산이다.

한상원 충북대 철학과 교수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여자 둘이 가족을 조립했습니다
【기사펼쳐보기】 비혼과 관련한 가장 큰 오해가 있다면, 비혼이 1인 가구를 뜻한다는 생각이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1인 가구가...
| 2019.02.22 06:06 |

비혼과 관련한 가장 큰 오해가 있다면, 비혼이 1인 가구를 뜻한다는 생각이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1인 가구가 가장 기본적인 형태임은 분명하지만, 한국처럼 집값이 비싼 곳에서, 특히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더 낮은 임금에 머무는 경향이 있는 상황에 1인 가구만을 고집한다면 삶의 질에서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집에서 사용하는 소모품은 묶음으로 구매해야 저렴해지고, 반려동물이 있다면 출장이든 여행이든 집을 비우기가 쉽지 않으며, 집을 구입하려면 혼자 힘으로는 쉽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비상시에 발생하는데, 일상적으로 서로 돌보며 만일의 경우 응급처치를 위해 병원에 함께 가 줄 사람이 필요해진다.

이쯤에서 “그러니까 결혼해”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면, 이 책부터 보시라.

.

김하나, 황선우 두 사람의 에세이다.

‘싱글’인 두 사람이 함께 살기로 하고 은행의 도움(대출)을 얻어 아파트를 구입했다.

마음에 맞게 인테리어를 손봐 각자 함께 살던 고양이 두 마리씩 모두 네 마리를 데리고 여섯 식구의 동거를 시작했다.

하쿠, 티거, 고로, 영배는 그 고양이들의 이름.

는 이 둘이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동거 2년차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묶은 에세이다.

둘의 글이 번갈아 실렸고, 곳곳에 집의 여섯 식구 사진이 실려있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 같이 살기로 했다고? 둘은 오랜 절친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같은 성별에 동향 출신, 출신학교도 같고 나이도 한 살 차이인 두 사람은 트위터를 통해 만나, 알고 지낸 지 6년 정도 됐다.

김하나는 카피라이터 출신으로 현재 작가, 팟캐스트 진행을 하는 프리랜서이며, 황선우는 (W Korea) 에디터로 오래 일한, 현역 직장인이다.

둘을 묶은 끈이 지연도 학연도 아닌 취향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른바 취향의 공동체에 공간을 부여한 셈.

결혼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작은 쉽지”라며 고개를 저을지도 모른다.

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다.

두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것은 두 세계가 합쳐진다는 것이고, 이 두 사람은 사십여 년간 고정된 생활습관의 절충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했다.

빈 틈이 있으면 물건으로 채우는 황선우의 짐 규모를 김하나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감각(“물건들의 대왕릉”)에 웃음이 나는가 하면, 각자가 가져온 테팔 전기주전자 중 어느 것을 남기느냐 같은 어이없는 일로 싸운 일에는 둘 다 신선은 아니었군 싶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테팔 전기주전자는 결국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두 사람은 비혼공동체를 확산시키는 데도 적극적이다.

“김하나는 친구들의 중심에서 모임을 만들고 이끄는 작은 대장 같은 사람이었다”는 책 속 말처럼, 새해 첫날에는 같은 아파트로 이사 온 친구들을 불러 떡국 4인상을 차리고, 친구들이 뭉쳐 함께 휴가를 가거나, ‘망원 스포츠 클럽’이라고 이름까지 붙인 운동 모임과 음주를 곁들인 뒷풀이를 한다.

를 읽다보면 동거인으로 서로에게 헌신하는 만큼 서로의 다름에 촉을 곤두세우고 살아가는 일 역시 중요하구나 싶어진다.

“둘만 살아도 단체생활이다.

” 황선우의 옛 직장 상사가 한 말이라는데, 혼자 살기 베테랑이라 해도 여섯 식구 살림은 말할 것도 없겠다.

특히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 두 사람의 금전 감각이 다르다는 부분도 눈길을 끄는데, 일단 직장인 명의로 대출을 받고, 프리랜서는 매달 이자 납입과 상환에 더해 목돈이 들어오면 비정기적으로 크게 갚기로 했단다.

이 모든 과정에 상대에 대한 신뢰가 필요함은 물론인데, 대출을 받고 나니 돈갚기의 즐거움을 알게 되어 쇼핑을 끊고 악착같이 대출금을 갚아 1년 만에 대출의 절반을 상환했다고.

함께 살기로 결정한 첫 순간의 믿음은 실생활에서의 실천이 없이는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책의 부제는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이다.

조립하고 나니 크기만 달라지지 않고 부품의 생김과 완전히 다른 완성품이 태어났다.

이다혜 작가, 기자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아 임 어 빅빅 걸 인 어 빅빅 월드
【기사펼쳐보기】 새벽 여섯 시 이십칠 분이라고 했다. 열두 살의 작은 소녀가 ‘빅 걸’(Big Girl)이 되는 의식으로 첫 목욕하는 시...
| 2019.02.22 06:06 |

새벽 여섯 시 이십칠 분이라고 했다.

열두 살의 작은 소녀가 ‘빅 걸’(Big Girl)이 되는 의식으로 첫 목욕하는 시간.

어떻게 소녀가 초경을 시작하고 끝나는 날을 딱 맞춰 리틀 걸에서 빅 걸이 되는 성인식을 치르는 걸까 궁금했는데, 우리말로 길일, 손 없는 날, 상서로운 날을 스님이나 영매가 택일한다고 했다.

아름답고 훌륭하다.

받아놓은 박명의 그 시간, 소녀는 집 뒤꼍 우물에서 하얀 옷을 입은 채 목욕을 시작했다.

머지않아 아기를 낳을 거라는 소녀의 이모가 한 손으로 부른 배를 아우르며 흑단 같은 소녀의 머리칼 위로 연거푸 물을 뿌렸다.

열대의 나라라 한들 새벽 우물물은 얼마나 차가울까.

맨발의 소녀가 덜덜 떨었다.

정한 기운을 품은 온갖 약재를 넣어 우려낸 물로 딸의 몸을 씻어주면서 이제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온천지에 알리는 일은 엄마의 큰 기쁨이라는데, 소녀의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들었던 대로 엄마는 깊은 병중이었다.

성치 않은 얼굴을 감추느라 딸의 기쁜 성인식에 나서지 못하고 자꾸 뒷걸음질로 숨었다.

물방울을 떨구며 한 손에 향불을, 다른 손엔 흰 천에 싸인 끼리밧을 들고 나온 소녀가 엄마의 맨발에 엎드려 큰절을 했다.

창졸간 초대받은 다른 나라 낯선 이인 나마저도 들이단짝 중요 하객인 양 축하를 들이대는 순간에도 진짜 엄마는 이웃집 구경꾼보다 더 뒷자리에서 서성거렸다.

아빠와 삼촌이, 언니와 사촌들이, 이웃 사람들이 모두 ‘이제 엄마가 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했다’고 축하하며 파란 드레스로 바꿔 입은 소녀의 사진을 찍었다.

스리랑카 남쪽 시골 마을 빅 걸 파티의 주인공 따루(별이란 뜻의 소녀의 애칭)는 연예인 부럽지 않을 모습이었다.

‘정말 행복하다’며 따루는 수줍은 와중에도 잘 웃었는데 엄마와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자랑스럽지 못해서 차마 나서지 못하는 엄마, 다가가려다 멈칫거리는 아직 앳된 얼굴의 딸.

처음 보는 정경인데도 익숙하기 그지없는 까닭은 어린 날의 나와 내 부모의 모습이 저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얼굴이 남과 달랐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자식들의 기쁜 날들을 함께하지 않았고, 못했다.

사돈의 팔촌까지 다 오는 결혼식에도 아버지는 없었다.

마스크를 하지 않고 장에 나온 아버지를 피해 걸었다.

굳이 본 척도 하지 않음으로써 아버지는 나와 어떤 관계도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엄마는 어린 날 용암 같은 불에 데어 형체가 뭉그러진 조막손을 갖고 있었다.

평생 손수건으로 감싼 엄마의 오른손은 오히려 더 두드러져 보였다.

감출수록 드러나는 부끄럽고 아픈 부위를 가진 사람, 차라리 부재하고 싶어 존재를 지워버리는 사람의 딸로 자란 탓에 따루와 따루 엄마가 떨어져 있는 거리와 몸짓의 의미를 한꺼번에 다 알 것 같았다.

이봐요들, 믿어지지 않겠지만 손잡을 시간이 많지 않아요.

아픈 얼굴 만져줄 시간이 없어요.

금빛 해가 떠오르고 웃음소리 낭자한 파티의 정점에서 엄마를 딸들 옆에 앉게 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 날은 엄마가 돌아가신 지 26일째.

완전한 비움과 완벽한 소멸로 향해 가는 혼수상태의 엄마 병상에서 한 일이라곤 부끄러움마저 놓아버린 엄마의 조막손을 잡은 것뿐이었다고 말하진 않았다.

따루에게 불러주고 싶은 노래는 촬영이 끝난 후 혼자 불렀다.

I am a big big girl in big big world.

It is not a big big thing, if you leave me.

이프 유 리브 미.

작가, 전 페미니스트저널 편집장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열까지 세는 습관을 들이자
【기사펼쳐보기】 아이들은 10대의 나이를 통과하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낯선 아이가 되어간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아니...
| 2019.02.22 06:06 |

아이들은 10대의 나이를 통과하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낯선 아이가 되어간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아니, 생각이 있는 거야?’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한탄이 절로 나오는데 얘들은 무슨 작정이나 한 듯이 속을 뒤집는다.

이럴 때 부모는 속수무책으로 ‘사춘기’와 ‘중2병’이 지나가길 바란다.

10대 아이들의 마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왜 갑자기 아이가 돌변한 것일까? <10대의 뇌>를 쓴 프랜시스 젠슨은 아이들의 뇌를 연구하는 신경과학자다.

사춘기의 두 아들을 키우며 맘고생이 심했다는데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이 나왔다.

“나는 무엇 때문에 10대 아이들이 그렇게 사람 속을 뒤집어놓은 존재가 되는지 이해하게 돕고 싶다.

이것을 알아야 10대 자녀 때문에 혼란에 빠지거나, 그들에게 무작정 화를 내거나, 포기하고 두 손 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렇게 부모들을 다독이며 10대의 반항과 산만함, 예측할 수 없는 태도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10대의 뇌는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

특히 머리의 앞부분에 있는 이마엽(전두엽)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다.

인간의 뇌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뒤통수에서 앞이마 쪽으로 서서히 발달하는데 10대의 뇌는 80% 정도 성숙한 상태다.

뇌에서 뒤늦게 발달하는 이마엽은 인간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추론과 계획, 통찰의 능력이 생겨나는 곳이다.

아직 이마엽에서 정보처리가 미숙한 아이들은 상황 판단이 서툴고 충동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청소년의 뇌는 성인보다 자극에 민감하다.

도파민의 분비가 강화되어 보상을 조절하는 신경시스템이 예민하게 작동한다.

이렇게 감수성이 뛰어난 말랑말랑한 뇌는 새로운 것을 익히는 학습에 효과적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쉽게 빠져들고 중독되는 함정이 있다.

10대의 뇌는 술과 담배, 약물, 스트레스에 성인보다 훨씬 취약하다.

또한 감정을 조절하는 편도체가 미성숙하고, 이마엽과 다른 뇌 영역과의 연결이 느슨해서 인지적인 통제가 어렵다.

그래서 10대 아이들은 감정적으로 폭발하고, 과잉 흥분하고, 실수를 반복하고, 무모한 일에 목숨을 건다.

부모 말을 듣지 않고, 잘못하고 나서 말대꾸까지 하는 것이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책의 처방은 간단하다.

“열까지 세는 습관을 들이자.” 하나, 둘, 셋… 을 세는 동안 ‘어떻게 그럴 수 있어?’가 아니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자는 것이다.

10대 아이들은 자신을 들여다보며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무언가 어리석은 일을 하고도 왜 그랬는지 모를 수 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0대의 한계를 알고 있는 부모는 충격받지 않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심호흡을 하고 숫자를 세며 아이들의 이마엽이 되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청소년의 뇌는 성인과 다르다.

신경과학에서 아이들의 뇌를 연구한 것은 10여년밖에 되지 않았다.

현행 교육과 법 제도는 청소년의 뇌를 고려하지 않고 제정된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학교 시험시간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청소년 재판까지 다양한 곳을 뛰어다닌다.

성인의 신경학적 프리즘으로 아이들을 재단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진정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아이들의 눈을 보고 그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과학저술가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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