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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News on 15/02 Afternoon

‘계몽’은 어떻게 ‘자주독립’과 만났나
【기사펼쳐보기】 계몽이란 무엇인가? 칸트가 간단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감히 알고자 하라”(Sapere aude)...
| 2019.02.15 07:05 |

계몽이란 무엇인가? 칸트가 간단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감히 알고자 하라”(Sapere aude).

칸트에 따르면 인간의 “미성숙의 원인은 이성의 결핍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 이성을 사용할 수 없는 결단과 용기가 결핍되어서이다.

” 자기 자신의 이성으로 스스로 생각하여 판단하는 것.

요컨대 남이 나를 계몽시킬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서 계몽은 서구화·근대화·자본주의·제국주의라는 밖에서 온 네 쌍둥이 충격으로 사실상 시작되었다.

자유와 자율을 기본으로 하는 계몽의 과제가 밖으로부터 주어진 상황.

‘한국 근현대 학문 형성과 계몽운동의 가치’ 총서 1~4권이 터 잡은 시대 배경이다.

1880년대를 기점으로 1945년에 이르는 시기의 신문, 잡지, 교과서류 등 단행본 내용을 주제별로 분류하여 정리한 연구 성과다.

곧 5~7권도 나올 예정이다.

책에는 광범위한 원문 자료가 오늘날의 우리말로 번역, 해설되어 있다.

첫째, 지식 계몽의 매체였던 신문에 관한 부분이 눈길을 먼저 끈다.

“서양에는 신보(新報)란 좋은 방법이 있다.

서양의 신문은 모든 문무 관원부터 고을의 상인까지 보지 않는 자가 없다.

중국에는 신문이 많지 않기 때문에 조정의 명령을 아는 자가 적다.

날마다 발행되는 수도(首都)의 신문을 경향 각지에 고루 붙인다면 백성들이 보고 알 수 있어 서로 권유하고 인도한다면 모르는 사람도 알게 되어 나라에 해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 ( 제11호, 1884.2.7) 신문에 대한 이해가 대중매체라기보다는 정부 시책을 알리는 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시기에 신문의 기능을 비교적 정확하게 본 이는 유길준이었다.

그가 (1895)에서 말한다.

“태서인이 신문지를 보는 일을 세상 사람들의 쾌락이라고 일컬으니, 대개 사람의 소식을 듣기 위한 옛 사람들의 서적이 적지 않으나 세계의 물정을 통찰하여 지각하며 자기의 문견을 넓혀 세상살이를 하는 도를 연마하는 데는 신문지의 공이 또한 많은 듯하다.

” 신문에 대한 이해에서 볼 수 있듯이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새로운 문물사상에 대한 이해가 다양하게 뒤섞여 있었다.

둘째로 주목할 점은 국가와 계몽이다.

‘애국계몽운동’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계몽과 애국의 관계는 밀접했다.

“빈부강약의 세가 인민의 교도(敎導) 여하에 달려 있을 따름이다.

가히 인민에게 애국성 세 자를 힘써 가르치지 않음이 불가하다.

” (, 1901.12.17.) 전통적 군주국가의 충군애국에서 ‘충’이 군주의 은혜에 보답하는 백성들의 충성이었다면, 백성에 대한 이해가 국민이나 인민 같은 정치적 구성원으로 서서히 바뀌면서 ‘충’의 대상이 군주에서 국가와 제도까지 확장되는 경향을 보였다.

애국심이 자연발생적이며 국민 스스로 애국해야 한다는 당위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사람마다 나라를 사랑하는 성심은 자연히 생기는 바이라.

국민이라 하는 이름은 실로 우리 인류된 자의 스스로 중히 여기고 스스로 사랑할 것이로다.

” (, 1907.10.20.) 세 번째 주목할 점은 자아, 주체와 계몽이다.

계몽의 조건이자 과제 가운데 하나를 주체적 자아의 확립이라 한다면 자아 관념이 어떻게 이해되고 또 형성되었는지가 중요하다.

“우리 인류가 갖춘 영적 능력의 진정한 가치를 들면, 그 첫째는 스스로 분별력을 얻는 점에 있다.

이것을 의사의 자유, 인간의 자유라 함인데 만일 그 자유가 없으면 인간은 활동 기계와 다르지 아니하며 자아는 자연계의 노예가 된다.

” (오석유, 제8호, 1907.3.24.) 그런데 같은 글에서 개인, 자아는 국가의 자활, 자주독립, 부강과 연결된다.

“일개인이 스스로 활동하여 독립하면 일 가정이 자활독립하고 일국이 자활독립하니 일개인의 영향이 국가와 관계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도다.

” 이러한 논리는 이른바 자조론(自助論), 자강론(自强論)으로 이어진다.

순전한 의미의 개인적 자아 관념보다는 자주적 자강독립론으로까지 이어지는 자아였던 것.

책이 다루는 1880년대부터 1945년에 이르는 시기는 ‘계몽을 계몽하는 시대’였다.

계몽에 관한 다양한 관념과 개념들이 자주독립의 과제와 접선하면서 착종된 시기였다.

이 연구 성과 네 권은 그 접선과 착종의 양상을 정리해 보여준다.

스스로 계몽된 시민 주체의 형성은 그 후 오늘날까지도 진행 중이다.

계몽은 완료형이 아니라 영원한 진행형일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지성의 도전’이라는 부제가 붙은 김종영의 (휴머니스트) 곁에 이 네 권을 꽂아두기로 한다.

연구서·자료서 가치를 겸하는 이 네 권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개념사(槪念史) 또는 관념사의 관점에서 활용할 수 있으며 매체사의 각도에서 읽어볼 수도 있고, 사상사의 시각에서 살피기도 좋다.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이라는 점에서 계기성 학술 행사나 연구가 유행할 조짐이다.

유행과는 거리가 있는 든든한 기초 작업이 중요하다.

바로 이 총서가 좋은 사례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의사들을 긴장시키는…암에 걸리지 않고 장수하는 30가지 습관
【기사펼쳐보기】 (서울=뉴스1) 이영섭 기자 = 일본 베스트셀러 '의사들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의 저자인 곤도 마코토는 이 책...
| 2019.02.15 06:58 |

(서울=뉴스1) 이영섭 기자 = 일본 베스트셀러 '의사들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의 저자인 곤도 마코토는 이 책에서 현대의학이 놓치고 있는 암의 진실과 자연사할 자유를 얘기한다.

저자는 환자 입장의 치료를 현실화하기 위한 의료 정보 공개를 권장한 공로로 '제60회 기쿠치칸 상'을 수상한바 있다.

오랜 기간 의료현장에서 일해온 암전문의인 저자는 고정관념을 뒤엎는 임상사례들과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30가지 습관을 제시한다.

이는 암 환자 삶의 질을 높이는 처방이자 평온하게 천수를 누리는 비결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암에 걸리지 않고 장수하는 데 필요한 생활습관을 어려운 용어의 남발 없이 평이하게 소개하는 이 책은 일반인의 궁금증을 Q&A 형식으로 별도로 풀어 설명한다.

2대째 의사가 된 저자는 방사선을 통한 암 치료를 전문으로 해왔는데, 치료한 환자 중 여러 명이 방사선 유발 암으로 사망하자 반성하는 마음으로 현대의학의 폐해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그는 '환자가 어떻게 하면 고통받지 않고 오래 살 수 있을까' 고민했고 이를 기초로 '진짜암, 유사암' 이론을 제시한다.

진짜암은 발생 순간부터 혈액을 따라 여기저기 전이하고 온몸으로 퍼진다.

유사암은 전이하는 능력이 없으므로 방치해도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저자는 유사암으로 일찍 죽지 않고 진짜암의 90%는 방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암 치료를 하지 않는 것, 중단하는 것은 절대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오래 살기 위한 현명한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암에 걸리지 않는다, 발견하지 않는다.

치료하지 않는다'는 세가지 방법론을 제시한다.

이 방법론에 따라 작성된 30가지 습관을 살펴보면 ▲암에 걸리지 않는 습관으로는 Δ의사를 멀리한다 Δ검사를 받지 않는다 Δ유사암에 당황하지 않는다 Δ약을 먹지 않는다 Δ살을 빼지 않는다 Δ담배는 끊고 술은 적당히 Δ커피와 코코아를 마신다 ΔCT피폭으로부터 도망친다 Δ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을 제균하지 않는다 Δ항암보조제나 민간요법을 믿지 않는다 등이 제시된다.

▲암으로 일찍 죽지 않는 장수 지혜로는 Δ아침식사를 거르지 않는다 Δ7시간 숙면을 취한다 Δ고기도 당질도 거르지 않는다 Δ염분섭취를 줄이지 않는다 Δ혈압과 콜레스테롤은 약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Δ건강하다면 혈당치는 신경쓰지 않는다 Δ열을 내리지 않는다 Δ모든 일에 과하게 파고들지 않는다 Δ햇빛을 적당히 쬔다 Δ근력을 키운다 등을 강조한다.

▲암치료로 살해당하지 않는 병원 대처 방법으로는 Δ검사 수치에 주눅들지 않는다 Δ표준치료를 믿지 않는다 Δ암을 잘라내지 않는다 Δ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다 Δ의사의 으름장에 겁먹지 않는다 Δ시한부라는 말에 휘둘리지 않는다 Δ항암제에 손대지 않는다 Δ기적의 신약을 믿지 않는다 Δ인생을 즐긴다 Δ자연사를 목표로 한다 등이다.

저자는 진짜암이라면 증상이 나타났을때만 그것을 완화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저자는 "의대에서는 치료를 '한다'는 것만 가르친다.

'치료하지 않는다'는 것은 의사의 패배를 의미한다"고 지적하면서 과잉진료와 불필요한 의료 추방 필요성을 역설한다.

의료 상식, 암에 관한 의학 지식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저자의 주장은 분명 파격적이지만 음미해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 암에 걸리지 않고 장수하는 30가지 습관 / 곤도 마코토 지음 / 홍성민 / 더난출판 / 1만3000원 sosabul@news1.kr



세계는 나무 것, 사람 아니라···리처드 파워스 '오버스토리'
【기사펼쳐보기】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지금은 밤나무의 시절이다. 사람들이 커다란 나무 몸통에 돌을 던진다. 성스러운 환호 속에...
| 2019.02.15 06:12 |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지금은 밤나무의 시절이다.

사람들이 커다란 나무 몸통에 돌을 던진다.

성스러운 환호 속에서 밤이 그들 주위로 떨어진다.

이번 일요일에 조지아부터 메인까지 수많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위쪽 콩코드에서는 소로가 참여한다.

그는 지각을 가진 존재에게 돌을 던지는 듯한 기분이다.

자신보다는 좀 둔하지만, 어쨌든 친척 같다.

오래된 나무들은 우리의 부모이고, 어쩌면 우리의 부모의 부모일 것이다.

자연의 비밀을 배우려 한다면 더 많은 인류애를 키워야 할 것이다.

" 미국 작가 리처드 파워스(62)의 장편소설 '오버스토리'가 번역·출간됐다.

2018년 맨부커상 최종후보작이다.

프랑스에서 출간된 미국문학에 수여되는 미국문학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제명은 숲 상층부의 전체적인 생김새를 뜻한다.

인간과 숲에 관한 소설이다.

남북전쟁 전 뉴욕부터 20세기 말 태평양 북서부의 목재 전쟁과 이후에 이르는 이야기다.

비극적인 운명의 밤나무 초상사진 백 년치를 물려받은 화가가 있다.

이민자 아버지로부터 뜻모를 아라한의 족자와 나무가 세공된 반지를 물려받은 엔지니어 딸이 있다.

미공군 한 명은 격추당했다가 반얀나무 위로 떨어져서 살아남는다.

파티광인 대학생은 감전되어 죽었다가 공기와 빛의 존재들에 의해 되살아난다.

시민 극장에서 '맥베스'를 공연하며 움직이는 숲의 예언을 재현하기 전까지는 나무에는 관심도 없던 변호사와 속기사가 있다.

나무에서 떨어져 반신불수가 되었을지라도 컴퓨터 속 세계에서 더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학생이 있다.

청각과 언어 장애를 지닌 과학자는 나무들이 의사소통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탄생수 단풍나무와 운명을 같이한다고 믿던 아이는 인간의 맹점에 눈을 뜨며 영악하게 자라난다.

소설은 각기 한 그루의 나무로 상징되는 아홉 인물의 개별적인 삶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무의 부름을 받는다.

숲이 그러하듯, 이들의 삶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서로 연결되며 또 다른 거대한 이야기 숲을 이룬다.

"그녀는 그에게 말한다.

모든 것은 다른 것들에 의존한다.

오래된 숲을 필요로 하는 들쥐 종이 있다.

이 들쥐들은 썩은 통나무에서 자라는 버섯을 먹고 포자를 다른 곳에 배설한다.

썩은 통나무가 없으면 버섯도 없다.

버섯이 없으면 들쥐도 없다.

들쥐가 없으면 포자도 퍼지지 않는다.

포자가 퍼지지 않으면 새로운 나무도 없다.

" "여기는 나무가 끼어 사는 우리 세계가 아니다.

나무의 세계에 인간이 막 도착한 것이다.

" 김지원 옮김, 704쪽, 1만8000원, 은행나무 snow@newsis.com



조선시대 법치주의 근간, 한국고전번역원 '대명률직해' 완역
【기사펼쳐보기】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법치주의 조선'의 법전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 번역서가 나왔다.한국고전번역원은 "현재...
| 2019.02.15 06:10 |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법치주의 조선'의 법전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 번역서가 나왔다.

한국고전번역원은 "현재 전하는 대명률직해 판본 30여종 중 가장 대표성을 지닌 만송문고본을 저본으로 삼아 번역, 교감, 표점을 동시에 수행했다"며 "율뮨의 취지와 내용, 율문이 제정된 배경, 율문 상호간 이해를 돕기 위한 해설을 덧붙였다"고 소개했다.

대명률직해'는 태조 이성계가 명나라의 중요한 법전인 '대명률'의 율문을 이해하기 어려워 이두와 고유어로 알기 쉽게 번역하도록 한 책이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법치주의를 표방했으며 모든 범죄에 대명률을 적용하는 등 법전 정비에 힘을 쏟았다.

성종대에는 '경국대전' '형전'에 '용대명률'이라고 명시, 대명률의 형률체계를 조선시대 형법의 기본 골격으로 삼았다.

1964년 법제처가 처음 '대명률'을 번역했으나 학계 연구성과를 반영하고 법률·국어학적 가치를 살릴 수 있도록 원문과 직해문에 대한 정확한 역주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한국역사연구회 중세 2분과 법전연구반이 2003~2009년 '대명률 강독'을 1, 2차에 걸쳐 긴행했다.

2013년 한국고전번역원이 특수고전번역사업 대상서목으로 이 책을 결정하고 역사학 전공자들, 법학 전공자들이 참여하는 번역작업에 착수했다.

한국고전번역원 특수고전번역실이 6년간 매주 윤독, 토론, 공동번역을 한 결과물이 '대명률직해' 번역서 4권와 교감표점서 1권이다.

번역서는 1권(명례율~이율), 2권(호율~예율), 3권(병률~형률), 4권(형률~공률, 부록)으로 대명률 원문과 그에 대한 직해문의 번역, 주석, 해설로 구성됐다.

교감·표점서는 세종판, 공주판, 광주판, 진주판, 낙안판, 평양판 등 대명률직해 판본을 비교 검토해 교감에 반영했다.

표점은 한문 원전의 표점 방식을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도록 구성했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심희기 교수는 "서양에서 가장 걸작으로 꼽히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법전처럼 조선후기 대전회통과 육전조례도 매우 정교한 체계성과 추상성을 지닌 법전"이라며 "이 법전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여말선초에 수용된 대명률을 이두로 번역한 대명률직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4권의 번역서와 1권의 교감표점서는 역사, 법사학, 중세국어학 연구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suejeeq@newsis.com



사법행정권 남용, 왜?···김두식 '불멸의 신성가족'
【기사펼쳐보기】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김두식(52)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불멸의 신성가족' 개정판이 나왔다.법조계의 어...
| 2019.02.15 06:08 |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김두식(52)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불멸의 신성가족' 개정판이 나왔다.

법조계의 어두운 실태가 담긴 책이다.

김 교수는 판검사·변호사·브로커·법원공무원·경찰·기자·결혼소개업자 등 법원 안팎의 23명을 면접했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법조계 엘리트, 이른바 '신성가족'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2009년 출간 뒤 10년간 많은 독자들이 찾았다.

개정판에서는 최근 벌어진 '사법행정권 남용'이 법조계에 던지는 시사점을 정리한 글을 실었다.

사법시험 폐지와 법학전문대학원 출범 등 초판 출간 이후 법조계에 일어난 변화들을 넣었다.

김 교수는 "로스쿨이 출범하고 사법시험이 폐지됐지만, 법조계의 구조적 문제는 여전하다"고 지적한다.

"'신성가족'들은 공고하게 법원의 상층부를 점하고 있고, 로스쿨 졸업생들은 신성가족의 끝자락에서 어떻게든 안쪽으로 진입하기 위한 생존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시스템을 변화시킬 만한 유의미한 세력을 이루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국 오래간 해결되지 못한 병폐가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 "법조계가 엉망처럼 보이지만, 역으로 쇄신할 기회이기도 하다"고 짚는다.

"위기를 거치면서 법조계는 늘 한 단계씩 성장해왔다.

사법개혁을 위해 판검사 증원, 하급심 판결문 공개 등 구조적인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

개혁의 진정한 동력은 젊은 세대 법조인들이 될 것이다.

" 380쪽, 1만7000원, 창비 snow@newsis.com



‘문레기노답’ ‘스시녀’… B국어사전 보니 ‘동공지진’
【기사펼쳐보기】 ‘2018년 신조어 테스트’라는 제목이 궁서체로 적혀 있다. ‘#3개 이상 모르면 넌 그냥 아재’라는 무시무시한 ...
| 2019.02.15 06:07 |

‘2018년 신조어 테스트’라는 제목이 궁서체로 적혀 있다.

‘#3개 이상 모르면 넌 그냥 아재’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도 함께 붙었다.

아래 신조어 중 의미를 아는 것을 체크하란다.

심심하니까 한번 해보자.

‘①댕댕이 ②갑분싸 ③혼코노 ④띵작 ⑤별다줄 ⑥롬곡 ⑦렬루 ⑧TMI ⑨애빼시 ⑩엄근진’ 이 정도는 전부 알고 있다고? 자신은 금물이다.

곧 올해 탄생한 ‘2019 신조어 테스트’가 나올 테니까.

신조어 테스트가 아재력 검증의 척도가 된 지 오래다.

매년 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그해 나온 신조어들과 친절한 해설이 우후죽순 등장한다.

은 최근 나타난 수많은 신조어 가운데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어휘만 뽑아 설명한 사전이다.

‘갓 구운 빵을 보자마자 동공지진’, ‘신나게 질렀더니 통장이 텅장...ㄸㄹㄹ’처럼 상황에 맞는 충실한 예문도 덧붙였다.

사전에 실린 거의 대부분의 어휘가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생활 속에서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표현이다보니 가히 사전 아닌(非) 사전, 비(B)급 단어만 모은 사전이라 할 만하다.

사전에 등장하는 신조어들은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법+미꾸라지’의 줄임말인 ‘법꾸라지’의 뜻은 해박한 법지식을 이용해 법망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로,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우병우와 같은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의 행태를 꼬집으면서부터 쓰였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문레기’(문과+쓰레기), ‘문레기노답’(‘문과쓰레기는 답이 없다’의 줄임말) 등 문과 출신이 스스로를 비하하고 자조하는 단어에는 대학 졸업 후 취업이 어려운 인문계 학생들의 현실이 담겼다.

사전은 ‘소추’(소(小)+고추.

가슴크기가 작은 여성을 비하하는 일부 남성들의 발언 패턴을 따라한 것)처럼 첨예한 젠더 갈등에서 비롯된 신조어들도 그 단어가 만들어진 배경을 비교적 충실히 설명한다.

그러나 ‘차별적 표현’들이 구체적 설명 없이 쓰인 신조어도 없진 않다.

‘병신이 따로 없네의 줄임말’로만 설명한 ‘병따없’처럼, ‘병신’에서 파생된 신조어 8개(병따없, 병맛, 병맛짤, 병먹금, 병설리, 병신미, 병신타임, 병크) 가운데 ‘병신’이 장애인을 비하하는 용어라는 해설은 없다.

뿐만 아니다.

사전에서는 ‘스시녀’를 ‘일부 한국 남성들이 한국 여성보다 순종적이라며 일본 여성을 추어올리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스시녀라는 단어가 보통 ‘기가 센’ 한국 여성에 빗대어 사용되는 맥락을 고려하면, 이는 일본 여성들을 ‘추어올린다’기보다는 ‘남성의 말을 잘 따르는 여성’으로 대상화하는 여성 혐오적 표현에 불과하다.

‘일밍아웃’, ‘덕밍아웃’이 보편적인 신조어로 쓰이기 시작했을 때, 한켠에서는 이같은 신조어가 성소수자들의 언어인 ‘커밍아웃’을 가볍게 소비하는 행태는 아닌지 고심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신조어 하나에도 이를 둘러싼 배경과 의미는 복잡다단하다.

은 신조어들이 왜 나타났고 어떻게 쓰이다 소멸했는지, 그 과정에서 단어를 사용하는 구성원들이 성찰할 지점은 무엇인지 곰곰이 짚을 수 있는 재미있는 길라잡이가 되어준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열쇳말 동공지진: 동공이 마구 흔들리는 상태.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사물이나 사람을 봤을 때, 혹은 당혹스러운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나타나는 현상.

ㄸㄹㄹ: 또르르.

눈물이 흐르는 소리, 또는 그 모양.

일밍아웃: 일베+커밍아웃(coming-out).

자신이 온라인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서 활동한다는 것을 주변에 밝히는 행위.

또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그 사실이 알려지는 것.

덕밍아웃: 덕후+커밍아웃.

숨겨왔던 덕후(오타쿠, 오덕후)로서 정체성을 주변 사람들에게 밝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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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여, 우리의 권세를 영원하게 하소서
【기사펼쳐보기】 ⑤ 메디치 가문의 비주얼 프로파간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이며 ‘비너스의 탄생’ ‘프리마베라’와 같은 작품으로 ...
| 2019.02.15 06:06 |

⑤ 메디치 가문의 비주얼 프로파간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이며 ‘비너스의 탄생’ ‘프리마베라’와 같은 작품으로 잘 알려진 산드로 보티첼리는 1475년경 ‘동방박사의 경배’라는 작품을 완성하였다.

(그림 1) 피로에 지쳐 사색하듯 턱을 괴고 있는 요셉 아래로 예수를 품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보인다.

계단 위에서 이제 막 한 박사가 예수의 발을 감싸고 경배를 드리고 있는 중이다.

그 아래로는 갓 태어난 구세주를 알현하려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서 있고 가운데에는 붉은색 망토를 두른 두번째 박사가 무릎을 꿇고 있다.

그 옆에는 세번째 박사가 흰옷을 입고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은 채 두번째 박사를 바라보고 있다.

당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소(小) 교회당에서 이 그림을 보았던 사람들은 여기에 담긴 정치적 메시지를 단숨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계단 위 첫번째 박사의 얼굴은 메디치 가문을 피렌체의 권력 중심으로 끌어올린 코시모의 것이었고, 두번째 박사의 얼굴은 코시모의 아들이었던 피에로, 세번째 박사의 얼굴은 그 동생인 조반니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이 그려지던 무렵 이들은 이미 모두 사망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군중들 속에서도 우리는 쉽게 메디치가의 사람들을 찾을 수 있다.

왼쪽 그룹의 사람들 앞에서, 마치 이들의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인물은 바로 이 작품이 그려지던 무렵 피렌체를 이끌며 그 위명을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떨치던 소위 ‘위대한 자’ 로렌초를 묘사하고 있으며, 오른쪽 무리의 사람들 가운데 붉은 줄이 들어간 검은 옷을 입은 채 다소 침울한 표정을 하고 있는 인물은 그의 동생인 줄리아노이다.

여기에는 메디치가의 가신들과 주변의 다른 인물들도 그려져 있으며, 재미있게도 보티첼리 자신도 오른쪽 그룹 맨 아래 구석에서 관객을 바라보는 젊은이로 등장한다.

이 작품을 보티첼리에게 그리게 한 것은 당시 메디치가의 가신 그룹에 속했던 가스파레 델 라마이다.

(오른쪽 그룹 윗부분에 관객을 바라보는 듯한 흰머리의 노인으로 그림 속에 등장한다) 메디치 가문은 원래 세명의 박사에 대한 숭배의식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후원해왔다.

메디치 가문은 ‘동방박사회’(Compagnia de’ Magi)라는 일종의 공익조직에 속해 있었다.

피에로가 그의 아들 로렌초의 세례일로 고른 것도 동방박사 축일이었다.

그러나 보티첼리의 그림을 단지 메디치가가 갖고 있는 동방박사에 대한 각별한 경외심이나 애정을 표현한 것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이 그림에서 보티첼리가 성경의 사건과 동시대의 인물들을 한 장면 안에 배치시켜 마치 예수의 탄생이 지금 이 순간 피렌체 어딘가에서 일어난 일처럼 묘사한 것은 이 위대한 화가가 1500년의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현실의 정치지도자나 뛰어난 인물의 행적을 성경에 등장하는 다윗 왕과 같은 위대한 군주나 인물의 행적과 삶에 빗대어 이해하고 묘사하려는 시도는 중세 유럽에서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 아래에는 구약의 인물 및 사건들과 오늘날의 인물 및 사건들 간의 일종의 유비적 대응관계를 강조하였던 신학적 사고가 자리잡고 있다.

신을 온 우주의 군주이자 세상 모든 권력의 근원이며 참된 지도자의 원형으로 묘사하던 당시의 지적 맥락에서 아기예수의 알현은 흔히 당시의 종교 및 정치지도자들의 신심과 덕을 묘사하기 위하여 흔히 동원되던 모티브였다.

그것은 지도자로서 자신이 세계의 진정한 군주인 예수의 탄생의 의미와 그에 깃든 가르침을, 마치 그 자리에서 보고 들었던 듯 느끼고 깨닫고 새기고 간직하며 따르겠다는 일종의 서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보티첼리의 그림에는 메디치가가 피렌체에서 누리고 있는 지도자적 지위와 권력을 현시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보티첼리의 그림에서는 금권과 인맥을 총동원하여 피렌체를 쥐락펴락하던 한 가문의 자의식과 그에 아부하려는 가신의 공명심이 한데 엉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한 자의식이 표현된 것은 보티첼리의 그림이 처음이 아니었다.

약 20년 전쯤 파올로 우첼로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회랑에 노아의 홍수를 모티브로 한 프레스코화를 그렸다.

(그림 2) 대홍수가 남긴 혼란을 배경으로 오른쪽에 노인의 모습을 한 노아가 마치 이 모든 것을 초월한 자처럼 축복의 자세를 취한 채 서 있다.

우첼로는 이 노인의 모습 안에서 코시모 메디치의 모습을 구현해놓았다.

메디치 가문이 당시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던 종교적 사고와 상징, 예술의 힘을 빌려 프로파간다를 한 예는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오랫동안 역사가들은 중세의 억압적 질서에 맞선 자유의 보루로서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을 그려왔다.

특히 르네상스의 꽃으로 불리는 피렌체에 대한 우리의 인상은 이러한 ‘상식’에 크게 영향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 공화정을 지나치게 이상화해서는 안 된다.

피렌체는 대부분의 다른 이탈리아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계급과 계층 간의 차별로부터 비롯된 심각한 내부갈등에 시달렸다.

직물업과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소수의 가문들이 대길드를 중심으로 정치생활을 좌우하였으며 소길드에 속한, 별로 성공하지 못한 수공업자나 다른 직업군의 시민들이 자신의 의사를 반영시킬 수단은 제한되어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길드에 가입하지 못한 하층노동자들의 경우 아예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막혀 있었다.

수공업자와 하층노동자들이 주축이 되어 1378년에 일으킨 치옴피의 반란은 피렌체라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부와 권리의 불평등이 얼마나 컸는가를 보여준다.

인문주의자이면서 메디치 가문과 가까운 관계였던 레오나르도 브루니가 ‘피렌체 찬가’(Laudatio florentine urbis)에서 “세상 어디에도 피렌체보다 모든 사람에게 더 동등하게 정의를 구현하는 곳은 없습니다.

즉 세상 어느 곳에서도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가 이보다 더 동등하게 대우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썼을 때, 이는 도시를 지배하고 있던 상층들의 다분히 주관적인 시각, 혹은 피렌체 시민들이 공통적으로 원하고 있던 정치체제의 이상적 모습을 표현하고 있을지 몰라도 객관적 현실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이전까지 피렌체를 지배해온 알비치가를 누르고 1434년 피렌체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손에 쥔 메디치가는 공화국의 현실을 더욱 뒤틀어놓았다.

메디치가는 합법의 외관 뒤에서 자기 사람을 요소에 심어서 이들을 통해 정부를 통치하였다.

당시 피렌체 정부의 위원이나 관리들은 자격을 갖춘 시민들 가운데 추첨을 통해 뽑히도록 되어 있었다.

붉은 가죽주머니에 피선출 자격을 갖춘 시민들의 이름을 적은 슬립들을 넣어두고 위원회나 관직에 결원이 생기면 하나를 무작위로 뽑아 그 위에 적힌 사람에게 직을 맡기는 것이 규칙이었다.

메디치가는 어느 위원회나 관직에 해당되는 주머니에 어느 이름이 들어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관리인 ‘아코피아토리’(Accoppiatori)들을 이용하여 메디치가에 우호적인 사람들이 선출되게 하였다.

메디치가의 지배가 전혀 인기가 없는 것이었다고는 볼 수 없다.

1469년부터 메디치 가문을 이끌게 된 로렌초는 문사와 예술가의 후원자로서, 피렌체의 공공행사를 위해 아낌없이 주머니를 여는 부유한 시민으로서 큰 신망을 얻었다.

그뿐만 아니라 로렌초가 1479년 거둔 외교적 성공은 그에 대한 피렌체 시민들의 신뢰와 존경을 확고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불평등과 파벌 싸움으로 찢겨진 이러한 도시가 누릴 수 있었던 번영의 시간은 짧았다.

몰락은 서서히 준비되었고 어느 날 갑자기 다가왔다.

1494년 9월 프랑스의 샤를 8세가 나폴리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이탈리아를 침공하였다.

일단 이탈리아에 발을 들이자 샤를은 나폴리로 향하는 도시들에 성문을 열고 자신을 맞아들일 것을 요구하였다.

샤를의 진격이 싱거울 정도로 저항 없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당대인들은 이를 ‘분필전쟁’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샤를이 이탈리아를 정복하기 위해 해야 했던 일은 단지 분필로 군대 주둔지를 표시하는 것뿐이었다는 의미이다.

많은 도시들이 처음부터 전의를 상실하고 요새와 성의 열쇠를 샤를에게 바쳤다.

그 안에는 피렌체도 있었다.

굴욕적인 항복 소식에 피렌체인들은 자괴감과 모멸감에 빠졌으며, 그 분노는 저항 한번 하지 않고 개처럼 무릎을 꿇은 메디치가로 향했다.

자유 때문이든 다른 원한 때문이든 메디치가의 지배에 반감을 품은 세력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1494년 11월8일 코시모 메디치는 ‘자유’를 부르짖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피렌체로부터 가족과 함께 도주하였다.

그의 목에는 2000두카트의 현상금이 걸려 있는 채였다.

그리고 피렌체의 지배는 페라라 출신 도미니크회 수도사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의 손으로 들어갔다.

이후 피렌체의 운명은 점점 더 피렌체인들의 손을 떠나 강대국의 의지에 내맡겨졌다.

미래에 대한 회의감과 절망, 보다 자유롭고 평등한 새로운 피렌체를 그리는 희망이 한데 뒤엉켜 도시를 휩쓸었다.

다음 글은 그 시대의 절망과 희망을 보여주는 보티첼리의 또 다른 그림에서 시작한다.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누구의 시선으로 살피는가
【기사펼쳐보기】 19세기가 시작되던 1800년 정조 대왕의 급서 이후 세도 정치는 내정을 문란하게 만들었고, 학정에 시달리던 ...
| 2019.02.15 06:06 |

19세기가 시작되던 1800년 정조 대왕의 급서 이후 세도 정치는 내정을 문란하게 만들었고, 학정에 시달리던 백성은 민란을 일으켰다.

지난 500년 동안 조선을 지탱해온 성리학적 세계는 한계에 봉착했고, 봉건 말기의 모순들이 중층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으며, 밖으로는 외세의 근대가 닥쳐오고 있었다.

시대는 반봉건적 사회개혁과 반외세 자주화를 과제로 제시하고 있었지만, 1876년 강화도조약을 체결할 무렵 조선 정부는 갑작스럽게 다가온 낯선 세계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기도 어려웠다.

사상 초유의 격동과 시련의 시대를 맞아 우리는 어떤 방략을 세울 수 있었을까? 강화도조약은 불평등조약이었다.

조약 체결 이후 일본은 특권을 앞세워 조선을 수탈하기 시작했고, 민중의 반일 정서가 급격히 높아졌다.

민중의 저항이 거세지자 일본은 잠시 한발 물러나 정세를 관망하게 되었다.

이 틈을 타 조선 정부는 불평등 조항을 시정하고자 했지만, 국력의 차이가 너무 컸다.

이런 상황에서 고종 17년(1880) 6월, 예조참의 김홍집이 제2차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다.

김홍집은 청국 공사 하여장(何如璋)을 만나 일본과의 관계는 물론 국제정세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청국 외교관 황준헌(黃遵憲)은 자신이 저술한 (朝鮮策略)을 건네며 조선의 외교정책 수립에 참고하라고 권하였다.

김홍집은 귀국하여 고종에게 이 책을 헌상했다.

의 기본 내용은 중국과 가까이 하고(親中國), 일본과 결속하며(結日本), 미국과 새롭게 외교관계를 맺어(聯美國) 함께 러시아를 견제하자(制俄策)는 것이었다.

개항 이후 마땅한 국가전략이나 대응책을 찾기 어려웠던 조선의 입장에서 거부할 수 없는 마땅한 충고였다.

당시 영의정 이최응(李最應)은 물론 고종 역시 큰 영향을 받아 이를 수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영남 유생들은 퇴계의 후손인 이만손(李晩孫)을 중심으로 1만명의 연서(連署)를 얻어 과 김홍집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른바 ‘영남만인소’ 운동이었다.

서세동점의 격랑 앞에서 시류에 어두운 유생들이 전통적 화이관에 입각해 시대착오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손쉽게 단정하기에 앞서 생각할 것이 있다.

어찌되었든 이들은 선비의 긍지와 소신을 가지고 왕의 무능무책(無能無策)을 정면으로 공격하였으며 훗날 국권상실의 위기에 떨치고 일어나 민족의 활로를 찾기 위해 나섰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형식상 ‘사의’(私疑)라 하여 황준헌의 개인 의견으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내막은 북양대신 이홍장의 견해이자 청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외교노선이었다.

영국의 시선에 사로잡혀 세계정세를 바라보았을 뿐만 아니라 당시 러시아와 국경분쟁을 빚고 있던 청의 입장에서 러시아의 남하정책은 가장 심각한 위기였다.

비록 일본의 조선 침략 의도가 노골적이긴 했지만, 청나라는 우선 러시아를 방어하기 위해 조선이 일본과 수교하고, 다시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외교관계를 맺기를 원했다.

이것은 조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조선을 중국의 바람막이로 삼고자 했던 청의 의도를 관철하려는 것이었다.

황준헌은 중국 최초의 직업 외교관으로 일본의 유신 과정을 면밀히 살펴 중국의 나아갈 길을 설파한 애국자였지만, 조선의 애국자는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는 무수히 많은 외신, 해외 석학과 유수의 연구기관이 토해내는 정보를 접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정보와 정책적 조언은 과연 오늘날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일까? 스스로의 시선으로 안과 밖을 살피는 일의 엄중함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남들이 보여주는 대로 살 수밖에 없다.

황해문화 편집장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치열하게’ 말고 ‘효율적으로’ 고민하자
【기사펼쳐보기】 평소 점술을 무시하다가도, 퇴사·이직 등의 큰 결정을 앞두고 점집을 찾는 이들이 많다. 온갖 경우의 수를 따지며 ...
| 2019.02.15 06:06 |

평소 점술을 무시하다가도, 퇴사·이직 등의 큰 결정을 앞두고 점집을 찾는 이들이 많다.

온갖 경우의 수를 따지며 백만 시간 고민한 자신보다 용한 점쟁이의 ‘한방 풀이’를 더 신뢰하는 까닭은, 그만큼 아무리 고민해봐도 뭐가 좋은 선택일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 아닐까.

치열한 고민이 꼭 정답에 이르는 길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어차피 고민을 피할 수 없다는 것.

그러니 차라리 고민하는 법을 잘 배워서 고민의 개미지옥에서 벗어나자!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의 제안은 이렇다.

(그렇다고 점을 권장하는 건 절대 아니다) 고민을 잘하려면, 우리 뇌의 작동 원리와 한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게 출발점이다.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고차원적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을 발달시켰지만 위기의 순간엔 원초적 기능을 담당하는 변연계가 상황을 주도해, 합리적 사고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 무력해지거나 극단적으로 나쁜 생각에 빠져든다.

뇌는 불확실성을 싫어하고 외부 환경에 따라 쉽게 피로해진다.

뇌의 취약한 속성을 알게 되면, 고민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해법도 마련된다.

고민하는 사안의 시급성, 마음의 여유 자산 등을 점검해 고민의 경중과 순서를 정해라.

최선보다는 최악을 피하는 데 힘써라.

일상 생활에선 어느 정도 검증된 반복 행동(루틴)을 반복해라.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과 불안은 이 복잡한 사회를 살아가는 ‘기본요금’이라고 생각해라.

의지가 약하다는 비난을 새겨듣지 말아라.

결과가 좋든 나쁘든 고민의 과정에 별 문제가 없었다면 그 결과는 어쩔 수 없었다고 받아들여라.

노력·재능·환경만큼 중요한 게 운이다.

행운의 영역을 인정하자.

그러면 고민이 줄어든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칠순 할머니가 그림으로 들려주는 ‘그땐 그랬지’
【기사펼쳐보기】 볼일이 보고 싶어지면 걱정이 태산이었어. 변소간이 집에서 외따로 떨어져 낮에도 들어가기 무서웠거든. 송판 두 개 ...
| 2019.02.15 06:06 |

볼일이 보고 싶어지면 걱정이 태산이었어.

변소간이 집에서 외따로 떨어져 낮에도 들어가기 무서웠거든.

송판 두 개 걸쳐놓아 발을 헛디디면 인분 속으로 빠져.

요즘같은 화장지가 있었나 어디.

지푸라기를 보드랍게 비벼서 썼지.

나중엔 과수원 배 봉지, 헌책을 매달아 한 장씩 닦았지.

난 11남매 중 아홉째, 배과수원집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났지.

가난한 농가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남들처럼 혼인해 남편과 아들 둘 뒷바라지를 하며 평생을 살았어.

칠십이 돼서야 그림 그리는 재미에 빠졌지 뭐야.

희한한 게 그림을 그릴수록 고향 생각이 또렷해져서 아주 별난 게 다 기억이 나.

어린이들은 까마득한 옛일로 치겠지만, 알고 보면 교과서에서 배우는 역사보다도 훨씬 가까운 과거야.

내 그림을 보고 할머니한테 어릴 적 얘기를 들려달라고 하면 전래동화보다 재밌는 얘기가 술술 나올 거야.

‘그땐 그랬지’ 할 걸.

학교에서 전래놀이를 배우고 세시풍습에 대한 책을 필독도서로 읽힌다고 들었다만, 할미가 들려주는 이야기만큼 생생하겠어? 이 책에는 밥 먹고 손주 보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불철주야 그린 63점이 실렸네.

농한기인 겨울부터 시작해 농번기인 봄, 여름, 가을…, 농경 절기별로 펼쳐놓으니 50년대에서 70년대 생활풍경이 그대로 담긴 풍속화가 됐어.

소가 멍에를 메고 쟁기질을 하는 모습, 양쪽에서 못줄을 잡고 “어이” 소리치면 일렬로 늘어선 일꾼들이 허리를 구부려 줄에 맞춰 모를 심는 광경, 발로 밟아 볏단을 털어내는 ‘와롱와롱’ 탈곡기 타작 등 지금은 볼 수 없지.

어릴 땐 자연이 놀이터였지.

고무줄, 줄넘기, 사방치기뿐이랴.

한겨울 얼어붙은 빈논은 시청광장 스케이트장보다 신나는 썰매장이었단다.

철사날 붙여 만든 썰매를 밀어주다 꽈당, 얼음이 깨져 빠지는 바람에 덜덜.

간식 얘기도 빼놓을 수 없지.

감자 썩혀 만든 개떡, 쑥에 콩가루를 버무린 쑥버무리, 달달 볶은 메뚜기로 허기를 채웠지.

요즘 말로 ‘웰빙’이랄까.

술지게미에 사카린을 타서 먹다 비틀댄 적도….

남녀차별이 버젓하던 때라 설움도 많았지.

놋그릇과 반달숟가락이 떠올라.

놋그릇을 재 묻힌 볏짚으로 닦는 건 언니들 일이었지만, 놋그릇은 오빠랑 남동생 차지였어.

가마솥 보리쌀 위에 얹은 쌀밥은 남자형제한테 돌아가고, 내 숟가락은 솥바닥 누룽지를 긁다가 닳아 반달이 됐지.

큰언니 시집가던 날, 그을음 피어오르는 석유등잔 아래 졸며 공부했던 밤, 분유통에 튀길 곡식을 담아 줄세워놓고 뻥튀기를 기다리던 날, 음력 초사흘날이면 장독대에 손수 찐 고사떡을 놓고 11남매의 안녕을 빌었던 어머니, 닭똥집을 갈아 약을 만들어주시던 아버지 상여 나가던 날, 모든 게 아스라하구나.

7살 이상.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그림 소동 제공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달콤한 과자로 전하는 따뜻한 인정
【기사펼쳐보기】 편의점에 들렀다가 겹겹이 쌓인 초콜릿 바구니들을 보고 밸런타인데이 주간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이젠 너무 익숙...
| 2019.02.15 06:06 |

편의점에 들렀다가 겹겹이 쌓인 초콜릿 바구니들을 보고 밸런타인데이 주간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이젠 너무 익숙해진 말, 밸런타인데이가 제과 회사의 상술이 만들어낸 환상의 풍습이라는 뉴스가 슬슬 나올 때도 됐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은 늘 초콜릿을 주고받는다.

사람들이 상술을 몰라서 이용당하는 게 아니라, 진심을 전하는 건 늘 어려우므로 달력 속 날짜를 핑계 삼기 때문일 것이다.

초콜릿은 아니지만, 이런 계절에 어울리는 책들도 있다.

일본 에도 시대의 과자점을 그린 이 그런 책이다.

에도성 성문 서쪽, 시내에서 떨어진 뒷골목에 있는 작은 과자점 난보시야는 고급 과자를 납품하는 가게는 아니다.

다른 지방의 과자들을 그날그날 기분대로 만들어, 서민들이 싼값으로 사 먹어볼 수 있는 곳이다.

주인은 지헤에라고 하는 60대의 노인이다.

그는 차분하고 손님 응대를 잘하는 딸 오에미, 기발하고 씩씩한 손녀 오키미와 함께 난보시야를 운영한다.

그리고 그들이 내놓는 과자에는 삶의 비밀, 슬픔과 용서, 어릴 적의 추억, 인간사의 인정이 어려 있다.

소설의 각 장은 난보시야에서 내놓는 과자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과자의 유래를 따라가다 보면 숨겨진 사람들의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릴 적 먹었던 카스테라에는 미처 말 못한 아버지의 애틋한 정이 있었다.

반대로, 솔잎을 닮은 과자에는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복잡한 마음이 있었다.

경단 위에 찹쌀 알갱이가 붙은 모양이 가시 같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이가모찌는 애증이 깔린 뾰족한 마음의 상징이었다.

메추리를 닮은 커다란 떡 오오우즈라모찌에는 형제 간에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우애가 있었다.

매화 모양의 과자 우메가에에는 한순간의 흔들림일 뿐일지라도 평생을 환히 비추는 연심이 깃들었다.

뒷면이 희멀건하게 쓸쓸하다고 해서 솔숲을 지나는 바람이라는 뜻의 마쓰카제 과자는 장성한 자식을 결혼시키는 부모의 서운함을 빚어냈다.

마지막으로, 평생 다른 사람의 과자만을 흉내 내던 지헤에가 마침내 딸과 손녀의 힘을 빌려 스스로 만든 달 모양의 만주인 난텐즈키가 있다.

날과 계절 따라 차고 이지러질지라도 늘 떠오르는 달처럼 사람들은 인생에 스산한 슬픔과 실망이 있어도 꿋꿋이 살아간다.

과자에 관한 이야기지만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세상의 모든 단것들에는 쓴맛도, 짠맛도, 신맛도 같이 들었다는 생각을 해 보면 당연하다.

사람 사이의 정과 인연은 사사로운 일이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돌릴 수 없었다.

그래도 난보시야의 사람들은 계속 과자를 만들어가며 서툴지만 깊은 애정을 그 속에 담는다.

밸런타인데이가 지나면 헐값으로 떨어지는 초콜릿들처럼 많은 소설이 한 번 읽히고 잊히는 운명으로 간다.

달콤한 이야기를 전하는 소설들이 보통 그런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인생에서 기억할 만한 날들에는 늘 떡, 과자, 케이크, 초콜릿 등 달콤한 것들이 있었다.

하루하루가 전혀 특별하지 않게 이어지는 것 같아 버겁고 외로웠던 날에 달콤한 것을 먹고 버틸 수 있던 적도 있었다.

그런 소설들이 있다.

정교하게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라도, 달콤해서 위로되는 것들.

은 그런 따뜻함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은 소설이다.

작가, 번역가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투는 왜 ‘미완의 혁명’인가
【기사펼쳐보기】 “일반 국민으로서 냉정하게 판단해봅시다. 절대 공감하는 미투(는) 심석희, 서지현 검사님. 절대 공감하지 않은 미...
| 2019.02.15 06:06 |

“일반 국민으로서 냉정하게 판단해봅시다.

절대 공감하는 미투(는) 심석희, 서지현 검사님.

절대 공감하지 않은 미투(는) 양예원, 김지은”(gwan****).

지난 7일 ‘비공개 촬영회 성폭력’ 기사에 달린 한 포털사이트의 댓글이다.

이 글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와 지위, 섹슈얼리티를 타자가, 주로 남성이, 얼마나 쉽게 재단하고 규정지을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남성이 여성의 가치를 정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들은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보호해야 할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구별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니며 이를 통해 여성을 통제”(정희진)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재확인해준다.

해당 기사에 달린 1000개가 넘는 댓글 가운데 이 글은 4000회가 넘는, 가장 많은 공감을 받았다.

실제로 미투 운동이 1년 넘게 이어지는 동안 사회는 고발자의 자격을 끊임없이 구분하고 선별하는 작업을 해왔다.

대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의 행위가 일상과는 거리가 먼 폭력성을 띨수록 피해 생존자들에겐 ‘마땅히 고발할 자격’이 부여됐다.

성폭력을 일부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일탈로 축소하고 분리할 수 있을 때 오랜 시간 공고해진, 그리고 현존하는 남성연대가 계속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의나 평등을 부르짖었던 진보 남성 정치인들의 민낯이 드러났을 때 이 연대는 성폭력을 “큰일 하는 남자의 사생활 문제”, “좌절된 사랑 때문에 생긴 복수”(권김현영) 정도로 치부함으로써 불균형한 권력 구조에 눈을 감는 걸 가능하게도 했다.

‘남성중심적인 사회가 허락한’ 자격을 갖추고 미투가 가능한 고발자들은 얼마나 될까.

과연 가정폭력 피해자나 성 산업 종사자들이 겪는 폭력도 미투에 수용될 수 있을까.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남성 사회가 관심을 두는 것은 피해자의 고통이나 인권 침해가 아니라 해당 사건이 남성 사회에 얼마나 타격을 주는가”(정희진)란 점을 고려하면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미투 운동이 보여준 건, 여성에 대한 일상적인 폭력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여론도, 법정도, 가해자 대신 피해 생존자에게 “목숨을 건 저항이 얼마나 단호하고 절절했는지, 특히 자신이 얼마나 피해자다웠는지 최대한 증명”(정희진)하라고 요구하는 현실은 무수히 많은 폭력을 비가시화하는 데 힘을 보탠다.

미투 운동이 여성에 대한 폭력 전반을 고발하는 방향으로 확장해 나가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1심 재판부가 그랬듯,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개념조차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꾸려나가는 자율적 주체임을 존중받는 것”(한채윤)이 아닌 ‘정조를 지킬 의무’의 연장선에서 파악할 정도로 빈약한 성인지 감수성이다.

최근 일부 페미니스트들조차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주장하는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여성 범주 내에서도 다양한 권력이 작동하고 착취와 억압이 작동”함에도 불구하고 젠더와 폭력의 관계를 다루는 논의의 대부분이 “비트랜스여성만을 대상으로 삼는”(루인) 현실 인식은 트랜스젠더퀴어처럼 또다른 소외자를 만들어낸다.

배제는 폭력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투 너머’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폭력을 고발할 자격은 누가 부여하는가.

어째서 어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젠더 폭력’이 되고 어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그렇지 않은가.

그 가름의 기준은 무엇인가.

남성에겐 전혀 없는 정조 관념이 여성에겐 왜 계속 적용되는가.

왜 위력에 의한 폭력 피해자가 남성이면 노동 문제가 되고, 여성이면 성적인 문제가 되는가.

공동체의 안전과 성숙, 진보를 위해서 남성 중심적인 문화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이때 남성의 역할은 무엇인가.

미투가 ‘미완의 혁명’인 건 한국 사회가 아직 이러한 질문에 마땅한 응답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향의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가.

권김현영·루인·정희진·한채윤이 꾸린 연구모임 ‘도란스’의 네번째 책 에 그 힌트가 담겼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게 뭐야!
【기사펼쳐보기】 20세기 초 입체파가 처음 등장했을 때 대중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예술계에서도 엄청난 논란이 일었습니다. 원근감, 색채...
| 2019.02.15 06:06 |

20세기 초 입체파가 처음 등장했을 때 대중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예술계에서도 엄청난 논란이 일었습니다.

원근감, 색채, 명암을 통해 깊이와 입체감을 표현하는 대신 입체파 화가들은 기하학적 형태들을 기발한 조합으로 묶어 그림의 대상을 여러 다른 각도에서 본 것처럼 표현했기 때문이죠.

입체파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는 파블로 피카소인데, 그는 열렬한 고양이 애호가로 종종 고양이 형태를 작품에 등장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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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꺼벙이’ 아키시!
【기사펼쳐보기】 시대를 풍미한 사고뭉치들이 있다. 빨강머리 삐삐나 우리나라의 꺼벙이 같은 꼬마들이 그렇다. 샘터의 새 만화책 의 ...
| 2019.02.15 06:06 |

시대를 풍미한 사고뭉치들이 있다.

빨강머리 삐삐나 우리나라의 꺼벙이 같은 꼬마들이 그렇다.

샘터의 새 만화책 의 주인공 아키시도 그런 축에 끼고 남을 말괄량이다.

이런 악동들의 공통점은 어이없는 말과 행동에도 그 모습이 싱싱해 웃음이 난다는 것이다.

아키시도 생각 없이 교회의 영성체와 포도주를 잔뜩 먹는다든가, 거추장스러운 머리를 자르려 일부러 머릿니를 옮아온다든가, 옆집 아기를 먹이겠다고 버려진 야채로 수프를 만드는 등 무모한 일들을 서슴지 않지만 그 천진함에 쉽게 마음을 뺏기게 된다.

특히 오빠나 남자아이들의 거친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받아치는 모습은 흔한 만화들에서 그리는 ‘상냥하고 규범을 잘 따르는’ 여자아이의 전형을 깨는 통쾌함이 있다.

아키시의 일상은 글쓴이 마르그리트 아부에의 경험에서 왔다.

아부에는 1971년 코트디부아르 수도 아비장에서 태어나 12살에 오빠와 같이 프랑스로 유학을 왔다.

그린이 마티외 사팽은 프랑스에서 태어난 ‘선진국의 아이’로, 아키시는 두 사람이 아부에의 어린 시절을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탄생했다.

악동의 명랑한 일상은 시대와 사회를 뛰어넘는 매력이 있다.

수십 년 전 서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했지만 는 큰 위화감 없이 유쾌하다.

어른이라면 풍족하지 않아도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를 법도 하다.

아이에겐 우리보다 열악한 아프리카 친구들의 생활을 엿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가 현대의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큰 매력은 “자유와 모험”에 있는지 모른다.

“요즘처럼 아이들을 끊임없이 지켜보는 우리 사회에서 이 가치는 줄어들고 있죠.

저 같은 경우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세계에 맡겨져 있었죠.

정말 멋졌어요! 비록 부모가 된 지금, 제 아이들이 아키시나 친구들처럼 자유를 갖도록 하는 건 매우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 됐지만요.”(사팽) 초등 1~4학년.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후가 손톱을 물어뜯은 이유는
【기사펼쳐보기】 어쩌다 보니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어린이 책을 연달아 읽었다. 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 시리즈도 ...
| 2019.02.15 06:06 |

어쩌다 보니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어린이 책을 연달아 읽었다.

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 시리즈도 이번에 전권을 읽었다.

피터라는 토끼가 워낙 유명하지만 시리즈에는 고양이, 개구리, 고슴도치, 다람쥐 등 다양한 동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동물 의인화다.

동물을 주인공으로 삼았을 뿐 인간의 행태를 철저하게 반영한다.

피터는 토끼지만 엄마의 말에 순종할 것인가 혹은 본능대로 금지된 곳을 탐험할 것인가 하는 어린 시절의 발달 과제를 반영하는 아이로 그려진다.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 주인공들도 하나같이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의 세련된 태도를 보여준다.

김태호 작가의 단편집 에도 동물이 등장한다.

한데 정형화된 동물 이미지를 보여주며 교훈을 전하는 이솝우화 스타일도, 어린 아이들을 연상시키는 동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방식도 아니다.

익숙한 옛이야기들을 여러 번 꼬아 완전히 새로운 우화로 들려주거나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동물의 마음을 전하는 식이다.

예컨대 고전소설 의 별주부 자라는 단편 ‘남주부전’에서 해양 심층수를 제공하는 정수기회사 구 과장으로 등장한다.

구 과장은 실직한 후 집에서 살림을 하는 아빠에게 취직을 시켜준다고 꼬여 용궁으로 데려간다.

토끼 띠 아빠는 사회생활 하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간이랑 쓸개를 다 내주었기에 간이 없다.

한데 알고 보니 용궁에서 찾는 건 간을 잘 맞추는 사람이었다.

간 맞추는 실력이 뛰어난 아빠는 용궁의 파격적 스카우트 제안을 거부하고 집으로 온다.

아빠의 기를 살리는 현대판 토끼전이라 할 만하다.

단편 ‘제후의 선택’ 역시 손톱 먹은 쥐에 관한 민담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지만 전혀 다른 울림을 지닌 이야기가 되었다.

이혼을 앞둔 제후의 부모는 집과 차와 통장 등 재산을 나누는 데는 적극적이지만 정작 제후에 관해서는 침묵한다.

함께 살자고 하기는커녕 도리어 제후에게 누구랑 살지 결정하라며 선택을 미룬다.

제후는 민담에서처럼 자신의 손톱을 흰쥐에게 먹여 두 명의 제후를 만든다.

한 명은 아빠랑, 또 한 명은 엄마랑 살게 할 작정이었다.

고양이에게 발각되어 두 명의 제후가 모두 흰쥐로 돌아가 버리자 엄마는 “우리 제후는 어디에 있는 거야”라며 뒤늦게 찾는다.

이야기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진짜 제후의 손가락을 묘사하며 끝이 난다.

제후의 손끝은 “모두 빨갛게 멍울이 져 있었다.

손톱을 너무 짧게 잘라서 손톱 밑 살들이 전부 부어올라” 있었다.

제후는 손톱이 이상하게 아물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책을 덮고 나니 동화 속 어른들이 하나같이 아이들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오히려 아이들이 길을 잃고 헤매는 부모를 찾아간다.

그사이 아이들은 손톱을 물어뜯었을 테다.

어른들이 고개를 숙여 아이들의 손톱을 살피기만 해도 많은 문제는 해결된다.

초등 5~6학년.

출판 칼럼니스트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도시락 쌀 보리 비율 검사받던 ‘그때 그 시절’
【기사펼쳐보기】 ‘유신의 추억’이라는 말은 이율배반처럼 들린다. 현대사 중 가장 어두웠던 시기를 ‘추억’한다니. ‘조잡미’가 풀풀...
| 2019.02.15 06:06 |

‘유신의 추억’이라는 말은 이율배반처럼 들린다.

현대사 중 가장 어두웠던 시기를 ‘추억’한다니.

‘조잡미’가 풀풀 나는 표지 역시 이 시절의 무거움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이 책은 유신을 진심으로 추억하지 않는다.

다만 멀쩡한 사람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고 올림픽을 명분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삶터에서 쫓겨나던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때도 ‘응답하라 1988’과 같은 정겨운 일상은 있었듯이 유신 때도 가수나 운동선수에 열광하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삶은 있었다는 걸 생활사적 측면에서 보여준다.

또한 경찰이 자를 들고 다니며 여성들의 치마 길이를 재고, 국가가 학생 도시락의 쌀 보리 비율까지 통제하던 시절이 얼마나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폭력의 세월이었는가를 보여준다는 차원에서 비(B)급 표지와 제목이 그럴싸하다.

새마을운동, 가정의례준칙, 김대중 납치사건, 고교평준화 등 1972년 유신헌법 선포에서 1979년 10·26 사태까지 유신을 상징하는 열쇳말들을 70개 뽑아 에피소드 식으로 소개하는 유신 ‘입문’서다.

고등학교 역사교사인 지은이는 지루한 역사 연표 앞에서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에게 옛날 얘기로 분위기를 바꾸는 선생님처럼 자신의 경험을 곁들여 각각의 열쇳말을 풀어나간다.

유신헌법, 긴급조치, 인혁당 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 사이로 일상을 파고들었던 유신의 집요하고도 뻔뻔스러운 체제 전략이 흥미롭다.

한 예로 지금은 공안검사의 상징 정도로 기억되는 오제도가 유신체제의 반공 드라마에서는 ‘영웅’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

그는 자신을 정의의 사도로 그린 드라마 의 인기로 국회의원을 두 번이나 했고, 그의 회고록은 당시 중·고등학생 필독서로 널리 읽혔다.

지금의 엘리트 체육 파탄에 씨앗을 심은 것도 박정희 체제임을 명확히 한다.

박정희 정부는 가난했던 시절 스포츠 선수에게 보내는 열광에 주목하고 당시 북한이 세계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내자 1966년 태릉선수촌을 만들어 엘리트 체육을 위한 담금질을 시작했다.

이후 ‘사라예보의 기적’ 등의 성과도 냈지만 “코치의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맞았으며 넘어지자 계속 발길질”을 하는 폭력이 일상화됐다.

여성 선수들은 24~25살에 ‘노병’으로 은퇴하는 것도 예사였다.

허례허식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1973년 제정한 가정의례준칙의 바탕에는 공동체 의식에 대한 두려움, 즉 “부정의한 권력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민중이 모이는 것, 대표적인 장이 축제와 결혼식, 장례식”을 없애려는 의도가 있었음도 말해준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역사책에 안 나오는 3·1운동의 주인공들
【기사펼쳐보기】 1919년 3월5일 9시30분, 경성 덕수궁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순사보 정호석(당시 34살)은 아이가 아프다는 ...
| 2019.02.15 06:06 |

1919년 3월5일 9시30분, 경성 덕수궁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순사보 정호석(당시 34살)은 아이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휴가를 얻었다.

경찰관 옷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그는 서대문네거리에 있는 잡화상에서 광목을 사 집으로 돌아왔다.

넷째손가락 둘째 마디를 물어뜯어 흘린 피로 광목에 태극기를 그렸다.

다른 광목에는 ‘대한국 독립만세’라고 썼다.

담배설대에 광목들을 묶어 들고 집 근처의 흥영여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들어가 그는 만세 삼창을 한 뒤 ‘함께 만세를 부르지 않겠냐’고 물었다.

어린 여학생 한명이 나와 만세를 불렀다.

열 살 된 그의 딸이었다.

딸의 친구들 수십 명이 뒤를 이었다.

교사 두 명도 만세를 부르며 아이들의 뒤를 따랐다.

이들이 3·1운동의 ‘최연소 시위대’였다.

“그대는 왜 독립운동을 하였는가?”(검사) “삶에 쪼들리고 있는 2천만 동포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정호석) “이와 같은 일을 하면 무거운 형벌을 받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각오하고 한 일이니 목숨이 아깝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위험한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정호석은 딸이 다니는 학교로 가 만세시위에 동참하게 했다.

왜 그랬을까? 그건 2016년 하반기 서울 도심을 비롯해 전국에서 벌어졌던 촛불시위 때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나선 부모의 마음과 같지 않았을까? ‘만세’와 ‘촛불’은 나라의 미래를 바꾸는 일이었다.

조한성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아이에게 그 길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내 아이가 오래도록 그 길을 기억하고, 후일 그 길이 막히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면 제대로 된 길을 찾아 용감히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조 연구원이 최근 펴낸 은 3·1운동의 진짜 주인공들 이야기다.

“이 땅에 민주주의를 가져오기 위해,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싸워온 사람들은 대개 무명의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소중한 삶을 희생했지만, 역사책에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의 첫 번째 목표는 그들의 삶을 역사로 복원하는 것이다.

” 이들을 생생하게 담아 내기 위해 경찰신문조서와 검찰신문조서, 예심심문조서, 공판시말서 등을 활용했다.

신문·심문조서는 ‘한 것도 안 했다’고 숨기는 피의자·피고인과 ‘하지 않은 것도 했다’고 꾸미려는 공안당국 사이의 진실게임이 벌어진 기록이다.

거짓도 들어 있다.

그럼에도 이런 자료들을 적극 활용했다.

조 연구원은 그 까닭에 대해 와 통화에서 “조서 등은 보조 자료로 여겨져 왔지만, 거기에 사람들의 내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런 자료를 토대로 3·1운동을 기획하고, ‘독립선언서’와 만세시위의 소식을 알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만세시위에 나선 사람들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책은 여운형(1886~1947)에서 시작한다.

그는 1918년 11월 중국 상하이에서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했던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특사 찰스 크레인을 만났다.

1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를 논의한 파리강화회의에 조선 대표를 보내기로 하고, 이 회의와 윌슨 대통령에게 보낼 독립청원서 두 통을 작성했다.

조직의 명의로 청원서 서명을 하려는 목적에서 ‘신한청년당’이 만들어졌다.

‘벼락정당’이었다.

신한청년당은 이후 조선과 일본, 만주와 연해주로 흩어져 조선인들을 만나며 독립의 희망을 얘기했다.

“3·1운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책은 이어 천도교와 기독교의 독립운동 결정과 힘을 모은 과정을 다룬다.

독자적 운동을 모색하던 학생들도 종교계 쪽의 운동에 합류하기로 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독립운동을 한차례로 끝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의 생각은 향후 운동의 전국적 확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 독자적인 운동을 펼치겠다는 생각도 소중했다.

이런 생각이 있었기에 민족대표들이 독립운동의 지도를 포기했을 때 학생들이 나서 대신할 수 있었다.

” 학생들만으로 3월5일 남대문역 시위를 준비했다.

일제는 이날 모인 군중이 약 1만명이라고 했는데, 3월1일은 2천~3천명이라고 했다.

학생들의 조직력, 3월1일 만세시위에서 얻은 용기가 가져온 결과였다.

남대문 일대는 ‘붉은 수건’으로 물들었다.

경성에서는 이날 시위 때 태극기가 처음 나왔다고 한다.

‘독립선언서’는 보성고등보통학교에서 경영하는 보성사에서 인쇄됐다.

보성사 사무원 인종익(49살)은 독립선언서를 지방에 전달하는 일을 하다 청주에서 체포됐다.

고문과 구타에도 처음엔 입을 열지 않았다.

전주에서 선언서를 배포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만인이 죽어 백만인을 살리는 방법이 있다면 죽음도 불사할 것이오.

만인을 죽이면 만인의 피가 백만을 물들이고, 백만을 죽이면 백만의 피가 천만을 물들일 것이오.

그럼 결국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겠소?”(인종익·경찰신문조서) 인종익은 1년5개월여 수형생활을 한 뒤 1920년 8월 출소했는데 이후의 흔적은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일제가 만든 신상카드에도 ‘사진 없음’이라고 돼 있다.

“그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배재고등보통학교 2학년이던 김동혁(19살)은 3월1일 독립선언서 6매를 배포하고 만세시위에 참여했으며, 2일 지하신문 2호, 5일 3호를 배포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피고(인)는 학생이면서 어째서 이번 계획에 가담했는가?”(예심판사) “난 조선 사람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당연한 일일 뿐이었습니다.

”(김동혁) 조선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3·1운동은 제대로 된 지도부가 없었는데도 순식간에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자발성이야말로 대규모 민족운동이 가능한 원동력이었다.

” 어릴 적 서당에 같이 다녔던 노끈장수 김호준(21살)과 경성공업전문학교 2학년 양재순(22살)은 라는 지하신문을 만들어 배포했다.

그들은 이렇게 썼다.

“2천만 동포의 영혼과 삼천리강산을 가진 우리 민족은 맨손임을 걱정하지 말라.

철함 대포는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

” 지은이는 민주주의를 위한 모든 투쟁의 앞에 3·1운동이 있다고 말한다.

“100년 전 포기할 줄 몰랐던 평범한 사람들의 싸움이 오늘을 열었다.

민주주의가 파괴될 때, 국가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가만히 있지 않고 일어나 당당히 싸우는 역사를 만들었다.

그 시작에 3·1운동이 있다.

”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합리적 의심’ 원칙에 의구심 품은 판사의 선택은?
【기사펼쳐보기】 현직 판사로 있으면서 추리소설을 활발히 발표해온 도진기 작가가 신작 을 내놓았다. ‘신작’이라고는 하지만 작가가 ...
| 2019.02.15 06:06 |

현직 판사로 있으면서 추리소설을 활발히 발표해온 도진기 작가가 신작 을 내놓았다.

‘신작’이라고는 하지만 작가가 이 소설 초고를 완성한 건 3년 전이었는데 출간을 미뤄오다가 2017년 2월 법복을 벗고 변호사 신분이 되면서 비로소 책으로 낼 수 있게 되었다.

작가는 “판사가 아니었으면 쓰지 못했을 책”이며 “판사였으면 출간하지 못했을 책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도진기 작가는 그동안 주로 추리물에 주력해 왔지만, 이 소설은 스스로 ‘법정소설’이라고 소개했다.

20년 남짓 판사로 봉직한 자신의 경험과 사유를 담은 작품이라는 뜻이겠다.

소설 제목은 ‘의심스러운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을 따른다’는 원칙에 따라,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존재한다면 판사는 유죄를 선고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을 가리킨다.

주인공인 현민우 부장판사는 20대 초반 남자가 연상 여자친구와 함께 모텔에 투숙했다가 술에 취한 채 젤리를 먹던 중 기도가 막혀 죽었다고 알려진 ‘젤리 살인사건’을 맡는다.

사건 발생 당시에는 단순 사고사로 처리되었지만, 여자친구 김유선이 거액의 보험금을 수령한데다 죽은 이준호뿐만 아니라 다른 남자들과도 동시에 교제중이었다는 정황이 밝혀지면서 보험금을 노린 살인 혐의로 뒤늦게 기소된 것이다.

소설 속 사건은 2010년 4월에 일어난 이른바 ‘산낙지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남자친구와 함께 모텔에 투숙한 여성이 산낙지를 먹던 중 숨지고 남자친구가 거액의 보험금을 받았다가 역시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이다.

대법원까지 가는 재판 끝에 남자친구는 무죄 선고를 받았는데, 소설 속 현민우 판사는 실제 사건 당시 판사들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합리적 의심’ 원칙 자체를 의심과 심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엄격한 증거법칙에 따른 유죄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면 판사 개인의 판단은 양보되어야 한다.

젤리 살인사건.

의심은 농후하나 피고인이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확실히 존재했다.

(…) 합리적 의심을 넘어설 수 없는 이상 유죄로 하기엔 장벽이 높았다.

” 소설에서도 김유선이 이준호를 죽였다는 정황 증거는 차고 넘치지만, 구체적 물증과 증인이 부족하다.

배석판사 두 명과 합의를 거쳐 판결을 내리게 되는데, 두 배석판사는 김유선의 무죄 쪽에 손을 든다.

2대1.

다수결로 무죄 판결을 내려야 하지만, 최종 판결문을 낭독하면서 현민우는 무죄가 아닌 유죄를 선고한다.

은 합의의 파기이자 배신이며 ‘위법’이라고 할 수도 있을 판결을 내리기까지 현민우 개인의 고민과 갈등을 통해 ‘합리적 의심’ 원칙에 의문을 제기한다.

소설은 재판정에서 검사와 변호인이 주고받는 공방, 부장판사실에서 합의부 판사들이 벌이는 토론을 박진감 넘치게 묘사한다.

현안인 젤리 살인사건 이외에도 판사들의 일상 업무와 법원 안팎 풍경을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게 그려 보인다.

독자는 쉽게 접근이 어려웠던 법관들의 세계를 엿보고 그들의 고민을 어느정도 이해하게 된다.

“곰탕 국물처럼 뿌옇고 모호한 화법이 난무하는 곳이 법원”, “목에 힘을 잔뜩 준 고집쟁이 같다”는 법원 청사 외관 묘사, 그리고 “판사는 마그마가 꿈틀거리는 거대 단층 위에 200층 빌딩을 지어놓고 사는 직업”이라는 구절 등은 사법 시스템의 한계에 대한 문제의식과 판사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를 보여준다.

기존 법질서에서 ‘합리적 의심’ 원칙의 힘은 워낙 막강한 것이어서, 현민우 판사의 1심 판결은 결국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힌다.

그에 좌절하고 분노한 현민우는 판사의 권한과 책임을 넘어서는 행동에 나서고, 그 결과 빚어지는 일련의 사태들은 법정소설의 테두리를 뛰어넘는 스릴과 반전을 가져온다.

법의 역할과 한계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치열하고 진솔한데, 결말부의 거듭되는 반전은 극적 재미에 치중한 나머지 오히려 진지한 사유와 토론을 방해하는 느낌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상상 이상으로 인간과 동물은 닮았다”
【기사펼쳐보기】 찰스 다윈은 (1859)의 후속작 (1872)에서, 동물도 인간처럼 기쁨, 슬픔, 분노 같은 감정을 느끼며 그 표...
| 2019.02.15 06:06 |

찰스 다윈은 (1859)의 후속작 (1872)에서, 동물도 인간처럼 기쁨, 슬픔, 분노 같은 감정을 느끼며 그 표정도 비슷하다고 갈파했다.

지금은 상식이 된 이런 주장은 ‘정치적인’ 이유로 오랜 기간 무시돼왔다.

독일의 동물행동학자 노르베르트 작서는 에서 “동물도 생각하고 사랑하고 미워한다”(부제)는 ‘상식적 사실’을 관찰·실험·분석 같은 ‘과학적 연구’로 입증하고 그 의미를 짚는다.

특히 포유동물은 인간과 공통점이 많다.

두뇌 구조가 근본적으로 같으며, 침팬지 유전자는 인간과 99% 일치한다.

오늘날 개·고양이 등은 인간의 ‘반려동물’이 됐다.

동물권과 동물복지 개념도 생겼다.

동물의 감정과 행동이 인간의 관심사에 깊숙이 들어온 것.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과 동물이 ‘이성’의 유무에 따라 근본 차이가 있다고 봤다.

이게 사실과 다르다는 건 진화생물학 등 관련 연구로 밝혀졌다.

동물도 판단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고양이는 장난칠 때 기분이 좋고, 기니피그는 혼자 있는 걸 싫어한다.

지은이는 동물의 모든 행동은 진화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기질이 후대로 이어지는 ‘자연선택’ 원리가 작동하며, 그 과정에서 이타적 행동 또는 동족살해를 한다.

인간이 ‘이기적 유전자’에 지배당하지 않는 것은 인권, 평화, 평등 같은 문화적 성취 덕분이다.

지은이는 최신 동물행동학의 핵심을 이렇게 정리한다.

“동물들 안에는 인간과 닮은 모습이 무수히 숨어 있으며, 우리가 몇년 전에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인간과 동물은 너무나 닮았다.

”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를 혁신하는 도시 광부들
【기사펼쳐보기】 도시엔 어부와 농부만 사는 게 아니다. 도심 속 쓰레기에서 금맥을 찾아내는 ‘도시 광부’도 있다. 삶 전문가이자 ...
| 2019.02.15 06:06 |

도시엔 어부와 농부만 사는 게 아니다.

도심 속 쓰레기에서 금맥을 찾아내는 ‘도시 광부’도 있다.

삶 전문가이자 사회혁신의 주체인 이들은 버려지는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평범한 시민, 벤처기업, 자원봉사자 들이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세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가난과 실업, 질병, 환경오염 같은 문제를 정부나 시장이 해결해주던 시대도 저물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당장 주위를 둘러봐도 정책은 골목길 주차전쟁조차 해결하지 못한다.

발상의 전환, 삶과 유리되지 않은 창의적 사고는 그래서 더욱 필요한지 모른다.

주차전쟁의 해법이랍시고 정부가 내놓은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을 공유주차제로 바꾸자는 역발상이 그런 사례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구로구 독산4동의 이 실험은 3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이제 걸음마를 뗐을 뿐이다.

너무 느리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좀처럼 좋아지지 않아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 게 사회혁신의 본모습이다.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이들이, 지금껏 없던 답을 스스로 찾아 새로운 길을 내려는 흐름이 공동체를 더 오래 머물고 싶은 곳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책 제목에 등장하는 ‘줄리엣’은 로미오의 연인이 아니다.

에너지의 단위인 ‘줄’(Joule)에서 따온 가상화폐 이름으로, 네덜란드의 한 죽은 항구도시를 자원과 에너지, 사람이 선순환하는 청정기술의 놀이터로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됐다.

이 책이 소개한 전 세계 30가지의 사회혁신 실험은 구성원들 사이의 믿음과 인내심 위에서 가능했다는 공통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베토벤 스케치북' 속 힌트로 들여다본 교향곡 9편
【기사펼쳐보기】 베토벤 연구 권위자 루이스 록우드의 신간 '베토벤 심포니'(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베토벤이 남긴 스케치북과 수첩 메모...
| 2019.02.15 06:05 |

베토벤 연구 권위자 루이스 록우드의 신간 '베토벤 심포니'(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베토벤이 남긴 스케치북과 수첩 메모, 자필 악보들을 토대로 9개 교향곡 구석구석을 분석한 책이 나왔다.

베토벤 연구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미국 음악학자 루이스 록우드의 신간 '베토벤 심포니: 베토벤 스케치북에 숨겨진 교향곡의 심연'(바다출판사)에는 저자의 연구 성과가 집대성돼 있다.

록우드가 80대 중반에 쓴 책이다.

가장 유명한 클래식 작곡가 중 한 명인 베토벤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과 서점에 넘쳐나는 것 같지만, 저자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설명한다.

베토벤[연합뉴스 DB]그는 특히 "내 안에 있다고 느낀 모든 것을 꺼내놓겠다"고 다짐했던 베토벤이 남긴 방대한 분량의 스케치 자료에 주목한다.

베토벤이 직접 작성한 스케치 악보부터 메모, 일기, 편지, 유서 등을 '연결고리' 삼아 베토벤의 걸작을 탐구한다.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발전되지 못한 채로 그냥 남았지만, 하나같이 유명한 아홉 교향곡의 상상력이 어떤 토대에서 비롯되었는지 이해하게 해주는 자료들이다.

"(28쪽)스케치북 연구는 교향곡의 정치적·사회적·역사적 의미를 이해하게 돕는다.

어떤 점이 베토벤의 혁신이었고, 다른 작품과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다음 작품에서는 어떻게 발전하는지를 알게 한다.

저자는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완성된 작품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넓어지고, 우리가 교향곡 사상가로서 베토벤의 모습을 이전보다 폭넓게 다방면으로 파악하게 해준다"고 소개했다.

9개의 교향곡 초기 자료뿐 아니라 미완성으로 남은 10번 교향곡 악상까지 참고자료로 담겼다.

음악 형식과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한 용어 해설을 책 앞부분에 실었다.

장호연 옮김.

372쪽.

2만5천원.sj9974@yna.co.kr2019/02/15 06:05 송고



故 박서영 시인 1주기 맞아 시집 3권 잇달아 출간
【기사펼쳐보기】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걷는사람 제공](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지난해 2월 세상을 떠난 박서영 시인의 1주기...
| 2019.02.15 06:02 |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걷는사람 제공](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지난해 2월 세상을 떠난 박서영 시인의 1주기를 맞아 시집 3권이 잇따라 출간됐다.

문학동네에서 시집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를 내놨고, 걷는사람에서는 유고 시집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와 절판됐던 첫 시집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를 선보였다.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박 시인은 감각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언어로 문단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생전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와 '좋은 구름'을 냈고, 사후 두권의 시집이 나왔다.

유고 시집 원고는 박 시인이 작고한 후 평소 가깝게 지냈던 성윤석 시인에 의해 출판사에 전달돼 독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박 시인은 평소 삶 한가운데 육박해 들어와 있는 죽음의 이미지를 시에 많이 투영했고, 이번 시집들도 비슷한 맥락을 보인다.

다만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늘 생에 향해 있던 그의 뜨거운 시선은 이번 시집들에서 더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에서 그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담담하게 견뎌내는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게 다가온다.

'생각이 깊어 슬픔이 탯줄처럼 길어지는 사이 / 순천의 한 여관방에서 / 분홍색 목젖에 울음이 매달려 흔들린다 / 한 호흡만 더 건너가자, 생이여 / 추운 앵두나무를 몸 안에 밀어 넣고 있는 / 환한 가로등처럼'('울음의 탄생' 부분)그는 감상에 빠지지 않은 정제되고 단정한 모습으로 슬픔을 그려내지만, 그 쓸쓸함은 오히려 읽는 사람이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휩싸이게 만든다.

시한부 삶을 살면서도 동료들에게 알리지 않고 돌연 우리 곁을 떠난 박 시인을 두고 김재근 시인은 "그가 서둘러 우리 곁을 떠난 것은 그가 몸 안에 '천국'을 너무 많이 지니고 있어서 그 '천국'을 돌려주러 간 게 분명해 보인다"고 적었다.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문학동네 제공]'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에는 온갖 사랑의 모습과 그로부터 이별하는 과정이 가득하다.

그가 써 내려간 사랑은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라 세상살이를 겪음에 있어 주체성, 그 능동적이면서 유연한 의연함을 대신한 것이다.

'슬픔은 성게 같은 것이다 / 성가셔서 쫓아내도 사라지지 않는다 / 무심코 내게 온 것이 아니다.

내가 찾아간 것도 아니다 / 그런데 성게가 헤엄쳐 왔다 / 온몸에 검은 가시를 뾰족뾰족 내밀고.

누굴 찌르려고 왔는지 (…) 실종은 왜 죽음으로 처리되지 않나 / 영원히 기다리게 하나 / 연락두절은 왜 우리를 / 노을이 뜰 때부터 질 때까지 항구에 앉아 있게 하나 (…) 꽃나무 한 그루도 수습되지 않는 / 이런 봄밤에 / 저, 저 떠내려가는 심장과 검은 성게가 / 서로를 껴안고 어쩔 줄 모르는 밤에'('성게' 부분)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그의 시는 절망적이지도, 비참하지도 않고 오히려 모든 것을 뜨겁게 받아들인 용기로 가득하다.

시인의 말('오늘의 믿음' 부분)도 평생 사랑하고, 그 사랑을 노래한 시인에게 죽음조차도 사랑 이야기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준다.

'죽음만이 찬란하다는 말은 수긍하지 않는다.

다만, 타인들에겐 담담한 비극이 무엇보다 비극적으로 내게 헤엄쳐 왔을 때 죽음을 정교하게 들여다보는 장의사의 심정을 이해한 적 있다.

나는 사랑했고 기꺼이 죽음으로 밤 물결들이 써 내려갈 이야기를 남겼다.

'걷는사람 관계자는 "박 시인이 동시집과 에세이 원고도 남겨 추후 발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걷는사람 제공]bookmania@yna.co.kr2019/02/15 06:02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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